【 1인 캠페인 - 부부 】
경기도 여성발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대표님에 의해 경기도 여성정책의 방향에 대해 귀띔 받을 수 있었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예산을 골고루 분배하여 여러 가지 방편을 세우고, 그 정책(안)에 대한 기대 효과를 크게 하기 위해 위원회의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자세는 경기도가 가진 여성정책의 청사진에 대해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장 남짓의 지면에 커다란 뜻을 품은 내용을 접하며 행간의 의미까지 알아보고자 했다.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고여 있는 물이 결국엔 썩어버리듯이 도민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정책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듯이, 복지혜택에 대한 제공자와 수혜자의 피드백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성복지의 대상은 누구며 무엇을 제공하고자 하였는지에 대해 보고난 소감을 적어볼까 한다.
근래에 각 종 회의에 참석하고 나면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아동․청소년들의 유해시설에 대해 단속 엄포를 놓고 학교폭력에 대해 즉각적이며 강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 전면에 서 있다면, 한편에서는 아이들이 친하게 지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곳에 대해 안내를 먼저해야한다는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이는 ‘하지마라’, ‘안 된다’에 힘을 싣기 보다는 “해야 하는”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고심 끝에 나온 방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더욱 강하게 규제해야 할 대상이 따로 있는 것으로, ‘잠정적인’대상자를 상대로 펼치기에는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될 세상에 대해 그동안은 내 아이를 가두는 것으로 즉, 안전한 엄마 품에 품어 세상으로의 발돋움을 지연시키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고 본다면, 지금의 이러한 흐름은 규제해야할 대상에 대해서는 엄한 훈육을 하고, ‘잠재적인’ 대상에 대해서는 어른들이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인도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는 세상을 접하고 보니 여성복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단 여성복지분야에는 출산과 보육, 일과 가정의 양립이 눈에 잘 띄었다. 이 세상을 향해 발돋움한 여성들이 모두 직면하고 있는 문제라고 보여 진다. 필자도 역시 여성으로서 단 하나의 요인도 인생에서 배제할 수 없는 키워드로 다가오며, 해당사항이 없다며 저항하는 것이 무력하게 느껴진다. ‘지금’ 당장은 아닐 수 있으나 이 사회의 여성으로 주장하는 권리와 비등하게 의무감으로 다가오는 키워드라 할 수 있겠다. 출산에 대해서는 출산친화정책이 눈에 띄었다. 보육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아는 글귀들이 보였다. 그리고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해서는 들어본 것들이었다. 지금의 내가 처한 현실에서 그 글귀들을 소화했다면 ‘나와 상관 없네’라고 지나갈 수 있었지만, 이를 토대로 앞으로의 정책이 흘러 갈거라 생각하니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왜 나는 해당사항이 없는 걸까?’
대부분의 복지정책이 긴급하고 문제가 드러난 대상을 최우선으로 하여 수립이 되어 진행되니, 어느 정도 ‘버티고 있는’ 대상에게까지 순서가 돌아가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음을 정책자들이 호소하고 이해를 바란다고 했다. 물론 사회의 약자를 내쳐가면서까지 수행할 정책이 있는가 싶지만, 하나의 사과 박스 안에서 늘 곯은 사과만 골라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컵에 물이 반이 담겨 있을 때의 반응을 통해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던 것처럼, 사과박스 안에서 늘 제일 좋은 것을 골라 먹는 사람과 늘 가장 많이 곯은 것을 골라먹는 사람에게도 차이가 있음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한 마디 해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으로 출산친화정책을 시행하여 여대생들에게 다가가고 중․고등학생들에게도 다가간다는 것은 역시 ‘잠재적인’부분을 우선 고려한 정책이라고 본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야 한다고 본다. 지금의 출산 친화 정책을 통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몇 십년 후에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그럭저럭 버틸만하다고 하여 나중만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지금의 출산가능대상자들을 위한 정책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몇 년 뒤의 변화를 놓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출산장려정책의 대상자들을 보면, 잠재적인 미혼의 여자들(언제 아이를 출산할지 알 수 없으나 10년 내에는 하지 않을까 하는…)이며 출산을 2명까지 한 기혼녀들이다. 그 외 미혼모 대상의, 낙태불법국가의 현실을 십분 활용하여 미혼모지원장려정책 대상자들이 해당한다. 여기에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할 대상이 빠졌다고 본다. 둘째를 낳은 사람이 셋째를 낳게 한 것은 정말 정책적인 쾌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출산만 보면 그럴 수 있으나, 가계를 생각한다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출산이라는 말이 화두에 오르지만 이는 ‘부부’지원 정책의 하나라고 본다. 혼인관계든 사실혼 관계든 부부의 합의하에 모든 것이 일임되고 진행되는 것이 출산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부부가 된 결실로 첫 아이를 보게 된다면 이들이 둘째를 낳게 하는 세상을 만들어주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부부금슬이 좋으면 가정이 화목하고 그 가정아래 태어나는 아이들이 보호 속에 자랄 것이다. 출산만을 장려하고 부부관계를 외면하는 것은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부모의 마음을 외면하고 아이들이 보호 속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을 외면한 정책이라고 본다. 가정 속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축복받고 부부관계가 돈독해지는데, 지금 우리는 저출산에 대한 해결책으로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여성이 결혼하게끔 만들기 위한 결혼정보회사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과연 여성이 타켓인지 부부가 타켓인지는 애매한 부분이 있으나, 현재 부부가 왜 아이를 안 낳는지 그리고 첫째를 낳은 부부는 왜 둘째를 안 낳는지, 어떻게 하면 부부금슬에 도움이 되고 어떻게 하면 둘째 낳을 수 있는 환경이 되는지를 살펴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펴야겠다고 생각한다. 둘째 낳은 가정은 사명감을 갖고 셋째를 낳는 분위기로 가고 있음이 보인다. 부부의 연을 어떻게 맺게 되었는지 다시 환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면 이혼의 고비 앞에서 부부들이 보다 더 현명하게 활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