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캠페인 - 피임 vs. 낙태 】
‘몰랐어요’, ‘몰랐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알려는 의지가 없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은 뜻인 것 같은데 참 다르게 다가옵니다. 우리 어른들이 우리의 아이들이 모르지 않고 잘 알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어디서 온 것일까요? 잘 알고 있는지 알았는데 우리 발등이 콱 찍힌 순간 물으니, 우리의 아이들이 답합니다. “몰랐어요”라고 말입니다. 얼마 전에 ‘14세 여중생의 쌍둥이 출산이 임박했다’ 라는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청소녀가 성(性)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의 경계가 어디일지 당최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참 열심히 일러주었는데, 그 때는 고개를 잘 끄덕였던 것 같은데, 우리의 아이가 그럴 수 있다는 기미가 엿보이지 않았는데, 내가 어른으로서 잘 막고 잘 키울 수 있는 것 같았는데… 청소녀의 임신․출산이 코앞에 놓인 상황에 대해 많은 어른들이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가 ‘이런 정보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잘 알았다면…‼’ 이라는 조건에 충족이 되는 교육방법이 있을까요? 미리 알고 있다는 우리 어른은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요?
14세 청소녀의 임신 사실이 이제는 해외토픽 란의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출산과 이상하게 맞물리며 출산만을 부르짖는‼ 어떤 분야의 누군가의 의견에 동조할 수 없으면서, 청소녀들이 꺄르르 웃으며 꿈과 낭만을 먹는 시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허황된 욕심이 요즘 자꾸 듭니다. 그리움이 많을 고교시절을 맞이하기도 전에, 교복을 처음 입어본 중학생이 되자마자 출산을 맞닥뜨린 청소녀의 모습에 사뭇, 안타까움에 목 메이는 것 같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구축하는 것이 지금 이 때여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많은 분분한 의견이 놓일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우리 어른이 뻔히 말하는 대로 태어날 아이의 행복은 어찌 되는 가로 모두의 뜻이 모일 것 같습니다. 태어나는 아기에게는 아빠도 필요한데, 미혼모 시설은 말 그대로 엄마들의 공간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니, 이 세상에 아빠의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는 엄마만 아이와 덩그러니 놓여 보호받고, 애초에 아기의 아빠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미성년자의 임신이니 아기 아빠가 성인이라면 처벌대상이고 청소년이라면 책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 회피, 무시, 외면만이 있어 아기를 낳은 엄마는 상처만 가득 받게 될 것이니, 그래서 아이 낳는 어려움 앞에 놓인 청소녀에게 아기의 아빠가 누구인지 물을 수 없는 현실에 놓인 것 같습니다. 아기의 아빠가 누구인지 묻는 것은 태어나는 아기의 근원에 대한 답이 될 것도 같은데, 지금의 현실은 아기를 낳은 엄마의 안위가 보다 더 필요해 보입니다. 이렇듯이 청소녀의 출산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다 보니, 늘 중요한 문제는 뒷전으로 놓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린 소녀가 아이를 낳게 된 것에는 누구의 잘못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딸 가진 엄마들은 남자아이 탓이라고 하고, 아들가진 엄마들은 우리 아들은 그럴 리가 없다하며 혹 여자 아이의 행색에 관심을 보이고 딸과 아들을 다 가진 엄마들은 둘 다 잘못했지 라는 공평한 발언을 하십니다. 어른들 각자의 입장에서도 차이가 나며 잘잘못을 가리기 무척 어렵지만, 여기서 한 가지 챙길 수 있는 묘한 결론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이들의 뒤늦은 “깨달음”에 대해서 였습니다.
아이들이 모르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고 봅니다. 정보는 잘 알고 있지만, 이를 현실에 적용하여 본인이 직접 경험해 보았을 때의 결과를 모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잘못한 상황에 놓여 자신을 위한 변명을 하기 위해 꺼내는 말이 “몰랐어요”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접하게 되면 누구나 원망할 사람이 필요하게 됩니다. ‘으이그… 몰랐다고 하지 않나…그럼 누구 때문이니?’하고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 어른 들이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 집중하고 지원하다보면 이 시기에 아이들에 대해서 놓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잘잘못을 가려 책임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어떻게든 이 순간을 잘 무마하여 지나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어른들이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어른들은 10대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하나 둘씩 자신의 의견을 꺼내 놓으며 낙태와 피임 교육의 중요성이 화두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제동을 잠시 걸어보고자 합니다.
엄마 아빠가 될 준비를 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이혼을 쉽게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여 결혼의 의미가 변질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예를 갖추어 혼인을 하고 나면 부모가 될 수 있는 길임을 당사자도 주위의 사람들도 알게 된다고 봅니다. 이런 과정을 경험하며 아이를 갖게 되는 여성은 많은 고민과 많은 준비를 한다고 본다면, 이런 과정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아이부터 ‘덜컥’ 갖게 되는 10대의 엄마 아빠가 되는 방법은 무척 무책임하고 성의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10대의 임신에 대해 출산과 낙태의 기로에 놓인 여학생들을 접해보면 일단은 어른의 도움을 통해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 다른 아이들처럼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상황을 접하다 보니 어른들은 10대의 임신이나 낙태는 여학생의 인생을 망치는 것으로 확신하게 되고 여학생들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인 성교육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시간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참 잘 흘러갑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러 사람의 도움과 노력으로 두려워하던 결론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아이들은 발견하게 됩니다. 잘잘못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본인이 직면한 현실에 대한 자구책과 지원책이 아이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훈훈하고 따뜻해 보이기도 합니다. 꿋꿋이 견디어 나아가는 아이가 장해보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내용들을 잘 상상해 보시면, 희생양?이 되어버린 여아를 위로하는 과정으로 가며 이후의 결과물들도 더 이상의 희생양을 만들지 않겠다 라는 굳은 어른들의 다짐이 들어간 내용이라고 보입니다. 남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애초에 어려운 10대의 임신이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여성, 여학생의 망치면 안 되는, 여성의 인생에 대해서만 모든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고 여학생은 그래도 버티어 간다면, 남자아이는 어디서 어떻게 무슨 생각을 하며 있냐는 것입니다. 꿀밤 한 대를 때리며 ‘아이고 이 눔아…’하고 지나갈 상황이 분명히 아닌데, 우리는 우리의 아들들에게 한없는 관대함을 10대의 임신과 낙태에 대해서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10대의 임신과 피임을 예방하기 위해 지원해야 되는, 우리 아이들이 “몰랐어요!”를 말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성교육의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정말 피임교육일까요? 남학생에게 콘돔의 사용을 권장하고 임신만은 절대 안 된다를 강조하는 교육으로 가면 정말 되는 걸까요? 10대의 여학생의 임신과 출산이 정말 남학생이 콘돔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까요? 10대 여학생이 낙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아이들이 콘돔을 사용해야 하는 것을 몰랐기 때문일까요? 10대의 임신이 정말 피임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 일인 것일까요?
남자 아이들이 깨닫고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필요합니다. 몰랐다 라는 사실로 인해 책임회피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남학생들은 여학생이 출산을 경험하도록 깨달을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콘돔 준비가 답이 아니라 우린 아이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먼저 정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행가래로1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