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캠페인 – “묻지마” 범죄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CM송이 있었다. 좋은 이미지의 광고이기에 기억에 남은 것 같다. 좋은 감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필자도 동의한다. 하지만 근래에 광고나 소설이 아닌 뉴스에서 듣게 되니, 세상에 대해 걱정이 앞선다. “묻지마” 범죄 때문이다. 이 범죄로 희생되는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홀로코스트에서도 살아남은 자가 묻지마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이 보도 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문득 필자는 ‘묻지마 범죄’에 대해 우리가 정말 제대로 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묻지마” 범죄인걸까? 사실, “물어봐줘”의 범죄인 것은 아닐까? 라고 말이다. 사건의 피해자, 가해자의 관계와 관련하여 이름이 지어진 것 같은데, 왜 가해자는 정말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한 걸까? 정말 그 속을 모르겠고, 이유가 없다하니 그리 지어진 것 같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나쁜 짓을 했다. 끔찍한 일이라고 보도가 되고 가해자에 대해 신상정보가 공개된다. 그러고 나면 대략 짐작은 된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정말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그 피해를 희생자들이 ‘대신’당한 것이냐? 그렇다면 원래 누가 범죄의 대상이었냐? 라고 짚어볼 수 있겠다.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고의 문제로 비명횡사한 희생자들에게 단지 운이 나빴다고 밖에 말해야 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반대로, 불특정 다수로부터 “묻지마” 범죄의 피해자가 된 에피소드도 있다. 미국 수사물 드라마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살인이 일어났는데, 범인이 없는 것이었다. 증거를 기반으로 상황을 추리해보니, 비행기 안의 다른 모든 승객들이 한 사람을 죽도록 만들었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내용인 즉, 비행기 안에서 한 사람이 감정의 기복을 보이면서 상황을 위태위태하게 만들기에 그런 사람에 의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협을 받는 것 같아서 저지 시키려고 한 대 때렸다는 것으로, 알고 보니 모두가 한 대씩 때린 것이었다. 누가 결정적인 한 방을 먹였는지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아서 모두 무죄 방면되었다. 그때 수사관들이 모여서 이 일에 대해 애프터 모임을 가졌다. 만약 자신도 그 비행기 안에 있었다면 그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단 한 사람만이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바로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면, 그 사람이 살아있었을 것이라 말이다. 그렇다.
“관심”받고 싶은 대상이 되어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자 하는 것이 ‘묻지마’범죄의 특징이라고 보인다. 한 명 보다는 수십 명의 피해 사실이 뉴스에 나올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보면 그들의 범죄가 무척 대담하고 꽤 절절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범죄행위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자신의 불행에 민감하여 타인의 행불행이 보이지 않으니, 무척 이기적인 행보임에는 틀림이 없다.
4대악 근절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4대악과 관련된 사건의 결과에 따른 처벌이 아니라, 무엇이 범죄를 저지르게 하였는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먼저 온정의 손길로 느낄 만큼 “관심”을 보여준다면 대참사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묻지마 범죄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는 “관심”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본다. 성폭력 범죄도 역시 “묻지마”범죄의 하나라고 본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나쁜 짓을 한 것에 대해 딱히 피해자 ‘그 사람’에 대한 이유가 없다. 여성이라는 특징을 빼고는 왜 피해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관심을 우리가 세상과 주변인에 대해서 갖게 되면 좋은지, 이에 대해 제안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