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캠페인 – 실수 vs 잘못된 행동 】
의도하지 않았으며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내심의사를 제대로 보일 수 있는 표현에는 무엇이 있을까? ‘결과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알았다면 안 그랬다.’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이런 말을 함으로써 불러일으켜지는 결과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이런 말을 “듣는” 입장의 사람은 분통터지는 상황일 것 같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는데 눈에 보이는 피해가 있고, 결과가 이럴 줄 몰랐다는데 하나하나 짚어보니 전문가가 아니어도 보이던데, 책임이 있는 자들이 책임지지 않으려 하며 내뱉는 말의 대부분이 ‘실수했습니다’라는 말 인 것 같다. 실수(失手)라… 과연 이 말로써 책임(責任)을 탕감(蕩減)할 수 있을까? 책임 있는 자의 잘못을 짚고 바로잡기보단, 부주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더 무게를 두어 교묘히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말이 ‘실수’인 것 같다. “술 먹어서 실수 했습니다.”, “너무 예뻐서 실수 했습니다.”가 성폭력가해자들이 빤히 하는 말이라면, “욱해서 실수 했습니다.”, “참을 수 없어서 실수 했습니다.”는 가정폭력가해자들이 늘 상 하는 말이라면, 실생활이나 거래처에서 ‘그럴 수도 있지’라는 내심의사를 아주 교양 있게 “양해바랍니다”로 돌려주거나 아예 일언반구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왜 이런 말이 나오는 상황이나 이런 말이 문제냐 하면, 이런 말을 듣거나 이런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대는 이 상황이 쉽지도 않고 이런 말은 더더군다나 듣고자 했던 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실수”라며 말을 가벼운 목소리로 건 내는 사람으로부터 정말 들어야 할 말은 무엇일까?
실수는 부주의로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잘못된 행동”이다.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인데, 법정으로 가야만 “잘못된”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실수라고 하면 너그럽게 ‘알아서’ 용서를 해줘야 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스스로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용서를 구한다. 도둑질은 잘못된 행동으로 모두가 합의한 잣대이기에 누가 봐도 잘못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실수는 관계가 전제가 되고 그 상대방에게 잘못한 행동이라고 보인다. “실수했구나~”라고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내가 아는 너는 그렇지 않은데, 이번엔 실수인 것 같구나’라고 관계를 유지·지속하기 위해 상대가 실수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고 본다. 하나의 예가 있다. 인터넷에 무한도전PD가 올린 내용으로 미국에 갔을 때의 일화이다. 미국에서 숙박시설을 이용하고는 다음 날 아침에 베게위에 메이드를 위해 팁 1달러는 두는 것이 여행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으로 미국을 갔던 무한도전PD도 베게위에 팁을 두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와서 100달라가 동봉된 편지를 받게 되었단다. 내용인 즉, 무한도전PD가 메이드에게 팁을 주려한 것은 맞는데 백달라를 둔 것은 실수로 보였다는 것이다. 메이드가 백달라 라는 돈을 고객의 호의로 생각하고 꿀꺽 할 수도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는 실수로 보여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일화를 통해 실수가 무엇인지 명백히 볼 수 있다고 본다. 무한도전PD는 부주의 했다. 그로인해 1달라가 아닌 100달라는 둔 잘못을 했지만, 메이드가 불쾌해 하지 않고 다음번에는 그러지 않도록 친절하게 편지까지 보내 상대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아 준 것이다. 이 편지가 오도록 무한도전PD는 자신이 한 행동을 몰랐단다. 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 통용되는 상식을 활용하여 상대가 교정 될 수 있다면, 관계를 전제로 한 잘못된 행동은 상대가 용서를 구해오지 않아도 정말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법정으로 가기위해 서로 자신이 불리하지 않은 증거를 모으는 것이 중요할까 애초에 상대가 불쾌해 하며 항의를 한 자신의 잘못한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하는 것이 중요할까? 이런 우문에 현답이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아끼듯 타인을 아끼며 대하고자 하는 존중과 배려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을 바라볼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행가래로 14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