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캠페인 – 누군가의 남동생이며 누군가의 소중한 남자 】
예방교육을 수행하며 폭력에 대해, 가해행위의 범주와 피해자의 지원체계를 사례를 통해 공유하며 공감하기를 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함께 잘 지내기”로 귀결하며 자신에 대한 민감성을 키워 거절을 잘해야 하듯 타인에게도 민감성을 키워 상대에게 가해행위자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모두가 잘 지내고자 노력하면 범죄행위 없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라는 귀결은 무척 자연스러운 것 같다. 사람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가 다 범죄행위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본인 스스로도 죄책감을 느끼고 지나치다고 느끼는 상황이라면 관계회복을 위해서 누구든 적정의 노력을 할 것이다. 아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낯선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논리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운이 없어서 피해를 입은 것이라는 논리가 세상에 팽배해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구조상의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모두가 노력하여 그 구조를 바꾸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인지 법과 제도는 강화되었는데, 그래도 유독 性과 관련하여 사회가 너그러움을 베푼다고 느끼게 된 것은 왜일까.
성폭력특별법이 1994년 시행된 지 올해로 20년째이다. 그리고 성매매특별법시행 10주년. 걸어온 길을 돌아오면 아직도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이 하나 둘 있을 때마다 그때마다 법과 제도가 변하였다. 이런 세상의 노력과 다르게 억지스럽게 변하지 않으려 하는 요인에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여성을 향한 남성들의 폭력에 대해 자신의 누이나 어머니, 연인 등 남성 자신을 둘러싼 여성을 떠올리게 하는 교육 자료들을 새로이 보게 되었다. 특히 성매매예방과 관련된 내용 중에 그들만의 문화 즉, 남성들의 군대가기 전 그리고 접대문화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되었다며 문화라고 접근하는 대목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성매매예방교육자료 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입장에서 성매매여성들을 바라보고 더 나아가 성매매를 하는 남성들에 대해서도 남성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성매매에 유입된 여성들이 누군가의 누이, 어머니, 연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보다, 성매수를 하는 남자가 누군가의 남동생이며 오빠이고, 어느 집의 가장이고, 누군가의 소중한 남자라고 생각하니 교육내용이 달리 보였다. ‘남성의 성욕은 해소되어야만 하며 성매매를 통해서라도 풀지 못하면 거리로 뛰쳐나가 아무나 강간을 할 수 있는 존재’(공공기관성매매예방가이드북, 여성가족부, 2009)로 보는 것은 오히려 존엄성을 폄하하는 사고라는 말이 맞다고 본다. 사석에서 남성들이 자신들이 매도당하는 것에 대해 불쾌해하고 성폭력범죄자들과 자신들은 다르다 라고 필자에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그리고 예방교육을 가해자가 될 사람들로 가정하고 하는 교육내용도 불편하다고 하며 세상이 남성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고 항변하는 그들을 접한 것도 역시 번뜩 생각이 났다. 누구를 위한 사회구조인가? 남성도 거부하고 여성은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성매매. 자신들을 받아주는 곳이 세상 어디에도 그곳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탈 성매매여성들의 발언에서 우리가 언제까지 그녀들을 누군가의 누이이며, 어머니, 연인이라고만 봐야할까? 여전히 젠더 관점에서 보면 남성에 속해있는 여성으로 다시 이름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역시 남성들도 누구가의 오빠이고 가장이고 소중한 남자라고 붙여진 것도 같은 관점이 아니냐 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남성을 남성 전체로 보며 성매매를 운운하였지, 그 사람이 가장이기 때문에 연인이 있는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의 의리 때문에 성매매를 거부하지 못했던 것을 본다면 오히려 누군가의 남성이기에 달리 갈 수 있다고 본다. 접대 때문에 거래처 사람들만 성매매현장으로 보냈더니 불편해해서 다음번엔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야만 했다는 남성의 발언이 떠오른다. 남성들의 문화라 칭해져서 어쩔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남성들에게 우리가 이름표를 붙여준다면, 그들이 거리를 헤매고 다니고 있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성매매에 유입된 여성들은 자존감을 회복할 수 없게 가혹하게 다룬다고 한다. 그녀들에게 왜 그곳에 계속 그러고 있냐고 묻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왜 어린아이 같이 구느냐라고 묻는 것과 같다고 본다. 사회에서 성매매여성들의 해방운동을 한다고 하여 그녀들의 생계를 책임져주지는 못하지만, 성노리개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을 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접대를 위해’, ‘친구따라’, ‘해외출장 중에’, ‘안마하러 갔더니’, ‘기러기 아빠라서’, ‘사이버 공간에서’… (출처, 성매매예방교육가이드북, 여성가족부). 성매매가 불법인 나라에서 일상적으로 이렇게 일어나고 있다. 함께 잘 지내기 위해서 이름표 붙은 남성들은 어떤 노력을 하면 될까? 무엇보다도 더 이상 성매매, 성희롱, 성폭력예방교육에 남자 전체를 매도하는 식의 가해방지내용이나, 여성의 피해를 여성 때문에 라는 인식은 이젠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예방교육을 수행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접하고 개인의 생각을 너무 많이 옮기려 하지 않기 위한 작업을 수 차례한다. 연령별, 성별이 다양한 대상을 상대로 다양한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는 요즈음 필자의 머리는 무겁고 마음은 무척 따갑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가장 깊이 있게 자세히 드려다 보며 좌절하지만, 강의 현장에서 그래도 희망을 본다. 강의는 희망을 나누는 장소라고 생각하며 정말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한 노력을 각자의 위치에서 정성을 다해 잘했으면 좋겠다.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그리고 가정폭력. 우리가 변해야만 달라질 수 있는 주제라고 본다. <행가래로 1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