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캠페인 – 거울효과 】
80년대 초등학교 한 학급의 인원은 50-60명이었다. 그때를 회상해 보면, 못된 아이들이 꼭 한 반에 한명씩 있었다. 그 아이가 못된 짓을 할 때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아이를 ‘이기주의자’라고 부르며 비난했다. 그래서 그 못된 아이가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나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운동회든 소풍이든 수업시간이든 그 못된 아이와 아이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잘 어울렸다. 다만, 못된 짓을 하면 아이들이 그에 대해 비난을 했고 그땐 그랬던 것 같다. 보통의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미움 받을 상황에 놓이지 않으려 노력을 하고 혹 친구가 불편한 감정을 꺼내면 즉시 사과를 하거나 아니면 싸움으로 가더라도 다시 서로 사과하고 친하게 지내는 쪽으로 가도록 선택을 하는데, 못된 아이라고 불리는 아이는 아이들이 ‘이기주의자’라고 부를 만큼 자기에게만 충실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못된 아이라고 불리는 아이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에 굉장히 밝았으며, 자신을 위해서라면 태도를 순식간에 바꿀 수 있는 아이였다. 무엇보다도 그 때에는 아이들이 추구하는 바가 비슷하였는지, 못된 행동을 하는 아이는 단연 눈에 띄었다. 우린 그 아이를 멀리해야 하는 아이로 보지 않고, 경계해야 함은 분명하나 그 아이도 우리 반 친구라는 사실은 명확히 하였던 것 같다. 80년대의 아이들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근래에는 ‘이기주의자’라고 불릴 사람들이 그저 싸이코패스(생활 전반에 걸쳐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거나 침해하는 성격적 장애를 일컫는다)라고만으로 분류되는 것 같아서 이다.
우리와 다르다 라고 선을 긋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일 것 같다. 각종 검사결과를 사용하여 유형에 따라 분류를 하고 문제만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대하기는 어찌 보면 쉽다. 주의사항을 참고하면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문제가 있음이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있는 사람도 없고 만나는 사람마다 문제가 있니 없니를 따지고 만나는 것도 무척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대신 상황에 따라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누구든지 알아볼 수 있고 잘못되었다고 알려줄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알아봐 주는 사람은 있으나 못된 아이가 되기로 한 자들의 마음이 80년대 아이들과 다르다는데 있다. 80년대 못된 아이는 아이들이 자신의 어느 때의 모습을 싫어하는 지를 안다. 그래서 그런 비난에 익숙해지기도 하면서 더 못된 아이가 되지 않길 선택하는데, 지금의 못된 아이는 모두가 비난을 해도 더 못된 아이가 되는 것을 선택해 버린다. 비난조차 듣지 않기 위해 자신의 귀를 막아 버리는 것이다.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나쁜 사람들이라 칭하며 자신의 세계를 더욱 확고히 하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을 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스킬만을 익힐 뿐, 사람의 마음을 얻고 읽고 나누는 것에 대해 무관심한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 않는 것으로 괴롭히는 못된 아이가 된다.
그 옛날에 못된 아이는 다른 누군가에게 거울이 되어 다른 이들은 그런 모습을 고치게 되는 기회를 얻거나 그러면 안 된다는 기준을 확립하는 선택을 하였다. 잘잘못을 판단하는 기준을 그렇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명확하게 세워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을 돌아보면 못된 행동을 하는 아이를 비난하는 아이도 없고, 못된 행동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는 아이도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의 못된 행동은 어른에 의해서 수정되어지는 것 보다 또래에 의해서 수정되어지는 것이 더욱 많았던 80년대 생활을 돌이켜보면, 요즘 아이들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고 있는가에 대해 큰 아쉬움이 든다. 거울효과는 거울속의 모습이 따라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좋은 것은 따라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의 심리라고 한다. 그러니 못된 아이의 행동은 따라하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일 것이다.
아이들이 여전히 서로 치고 박고 싸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남녀 간에 성과 관련된 폭력이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예전에도 다투다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고 지금도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이 죽고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사람들끼리 해결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의 규칙으로 제도로 더 많은 정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본성을 활용하기 보다는 사실에 입각한 판단만을 더 자주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이 그러하니 인간이 가진 여러 복합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사실만을 서로 수용하는 것에 불과한 것 같다. 필자의 생각에 거울효과의 진정성은 바로 거울을 보는 그 인간 본성이 가장 큰 기준이 되는 것 같다. 내가 보아서 좋아 보이는 것, 내가 보아서 나빠 보이는 것에 대한 자신의 따라하기 행동이 결정되는 것이다. 친절을 마주하면 친절을 베풀게 되고 불쾌감을 마주하게 되면 불쾌함을 내 뱉게 되는 것이라는데 우린 친절하지 못했을 것 같은 물리적인 사실만을, 불쾌함을 표현한 방식적인 사실만을 가지고 서로를 비난하고 있는 것 같다.
80년대 아이들은 서로 잘 지내기 위해 못된 행동에 대해 비난을 서슴치 않았다. 못된 행동을 한 아이도 못된 행동을 덜 하는 쪽으로 갔기에 친구라는 울타리에 계속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른은 아이들의 본보기라고 한다. 아마도 정말 그럴 것이다. 어른을 본보기 삼아 자란 아이들이 모여 그 자신들 만의 사회에서 본보기에서 배운 대로 행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아이들이 어른들처럼 사실관계만을 따지지 않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거울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선 우리 어른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른들이 아이들의 세계에 관여를 하는 건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에게 좋은 거울이 되어줄 수 있기 위함이 된마면, 훌륭한 본보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행가래로 1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