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캠페인 – 공감하기 】
졸음운전을 예방하기 위한 포스터가 운전 할 때마다 눈에 들어온다. 최근에는 ‘졸음운전의 종착점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사방에서 보인다. 섬뜩함이 느껴지면서 졸음운전이 얼마나 위험한 지 느껴지는 문구라고 할 수 있겠다. 문구를 보게 될 때마다, ‘졸음운전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따라오는 생각이 하나 있다. 스스로에게 경고가 되는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바로 다른 이의 졸음운전을 막는 것에도 효과가 있는 문구가 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가정폭력은 누구든지 신고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동학대범죄를 알게 된 경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다’는 문구가 익숙한 필자는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해당되는 내용보다는 주변인에 대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문구가 훨씬 좋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가정폭력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당사자들의 노력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옆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획기적인 방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승한 이가 졸음운전 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내용이나, 앞차의 운전이 이상하다고 느낄 때 경고를 해 줄 수 있는 방안을 담고 있다면, 졸음운전을 단 한 사람의 책임으로 가져가지 않고 모두의 관심으로 졸음운전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졸음운전을 한 이가 입은 피해는 본인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지만, 졸음운전으로 인한 피해가 본인에게 그치지 않고 다른 이에게도 미치게 된다면 너무나 안타깝고 참혹한 현실인 것 같다. 운전자는 당연히 그리고 동승한 자 모두가 같이 조심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안전운전을 실천할 수 있는 더 좋은 방안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차에 탄 모든 이들이 동시에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은 무엇이 있을까?
성폭력예방교육이 한창인 요즈음 강사들의 강사평에 많은 내용이 담겨있다. 성폭력예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에 대한 내용과 함께 수강생들의 학습태도에 대한 대응에 대한 고심의 내용도 꽤 들어있다. 잘 따라오는 것 같으면서도 산만해 보이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에 주의집중을 하라고 일일이 지도하기엔 강의 진행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주의 받은 수강생은 집중할 수 있게 되지만 그 말로 인해 강의를 잘 따라오는 이는 방해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강의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강사의 알찬 강의구성력이 우선이겠지만,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의 성실성도 분명히 협조사항으로 있어야 되는 것일 것이다. 수강생들의 협조를 받으면서 잘 구성된 강의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역사 왜곡문제와 관련된 기사를 많이 접하였다. 그 사안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한 나라의 대표로서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그 나라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외국인의 입장에 서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고 볼 수 있겠지만, 다른 나라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 글로벌적인 관점으로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마음이 들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그 존재의 행보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국내의 정서를 그대로 옮기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국제정세를 살펴보고 국민들에게 잘 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자국의 이익만을 챙겨서도 안 될 것이며, 다른 나라의 상황을 눈 가리고 귀 막고 하는 상황으로 가서는 안 되는 것일 텐데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국가를 대표하는 이가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공감하기」는 가해자교정·치료프로그램에 꼭 들어가는 내용이다. 가해행위는 이미 법적으로 잘못된 행동으로 판가름이 났기에 가해자가 받아들이고 있지만, 피해자가 그 가해행위로 인해서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성을 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데에 꼭 필요한 관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느끼는 것을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 남이 전달하는 것을 잘 알아채고 잘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에는 개인차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두 가지 모두를 실행할 수 있거나 둘 중 하나만 실행해도 이는 소통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잘 전달되었는지 확인하려 하지 않고, 다른 이가 전달해준 것을 잘 받았는지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폭력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공감하기는 일방적인 소통을 쌍방소통으로 바꿔주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감하기는 잘잘못을 가리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전환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졸음운전에 대해 다른 이에게 피해가 발생되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공감할 수 있는 캐치프레이즈 또는 표어가 모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을 막기 위한 최선을 다하기보다 피해발생을 일으키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는 쪽으로 애를 쓰게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상담소에서 상담원들이 하는 역할의 절반이상은 공감하기이면서 인식전환을 할 수 있도록 돕는데 있다고 본다. 문제를 문제로만 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토록 애쓰는 자신의 모습을 장점으로 보아 문제 자체에만 매달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쓰는 자신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공감하기는 비단 전문 상담원의 능력이나 실력이 아니라, 모두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본다. 다른 이에게 불행을 끼치지 않기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공감하기 어렵겠지만, 다른 이가 행복을 지속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는 충분히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고 본다. <행가래로 1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