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1인 캠페인

충돌 피하기 = 위기상황모면하기 [157호]

작성자행가래로|작성시간18.03.21|조회수29 목록 댓글 0

1인 캠페인

충돌 피하기 = 위기상황모면하기




  충돌.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게 되는 것 이상으로 감정적으로 아슬아슬하거나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는 것이 꼭 혜성끼리의 충돌하기 전을 지켜보고 있는 심정 같다. 사회현상에 대해 딱 짚어서 이렇다 할 입장도 없지만, 붕괴직전 또는 충돌직전의 상황을 계속 마주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계속적으로 들려오는 아동학대 및 성폭력 상황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온 사회가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건·사고에 대해 답답함 까지 들었다. 피해의 정황 및 상태, 처벌의 정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곳에서 무엇이 진정 원인이 되어 그런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한동안 살펴보았다. 주려는 것과 가지려는 것, 받고 싶은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뺏어서라도 가지려는 것과 구걸해도 소용없는 상태가 극한의 상황을 만들어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 속에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군대 내 성희롱 및 성폭력 문제가 있다는 것이 불거져 나올 때, 군대내 예방교육을 갔을 때도 한 말이다. 문제라고 인식한 지금 비난 받지 않기 위해 급급해 하기 보다는 군대만의 장점을 살려 그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찾아서 오히려 사회에 답을 제시해 줄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새로운 것을 수용하여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지만, 정말은 습관화되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들에 대해 점검을 해보면 잘잘못의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습관적·자동적으로 실행한 것에 대한 동기 자체가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요즘 정말 문제로 거론 되는 것들은 습관적·자동적인 실행이라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는, 분노·보복·혐오이다. 분노조절장애, 보복범죄, 혐오주의라는 단어가 바탕이 되어서 사건과 사고로 연결되어 지고 있는 것들이다. 모르는 사람 조심, 아는 사람 조심의 정도가 아니라 결국 모르던 알던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피해예방의 지름길이다 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쁜 사람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고, 누구와 있든 간에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쁜 사람으로 변해가는 이상한 느낌이 들 때를 위기상황으로 보고 그 자리를 피하자는 것이 피해예방교육의 토대로, 힘의 불균형에 따른 “관계 맺기”에 대한 것을 강조하였다면, 분노·보복·혐오는 관계 맺기에 대한 노력 없이 그냥 무작위적으로 발생되는 것으로 보여 진다. 자연재해는 이유 없이 발생되는 것 같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고, 인재역시 그렇다. 이에 비해 분노·보복·혐오는 오로지 신념의 충돌로 오는 현상이라고 밖에는 보여 지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이들이 원인이 되어 발생되는 사건·사고에는 진정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가 처벌에 대한 이야기보다 먼저 논의 되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좁혀지지 않고, 때와 장소가 정해지지 않고, 어느 순간에나 발생되는 이 신념적인 활동은 폭력의 정당성으로 까지도 가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어떤 폭력피해와 다르지 만은 않다고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결국 힘의 지배 원리가 작용한다는 것에 있다. 성폭력·가정폭력·아동학대를 비롯해 세상에 존재하는 폭력피해를 보면 힘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 누가 더 분노했느냐, 누가 더 보복하려 했느냐, 누가 더 혐오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드러내려고 힘을 가지고 있느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타고 있는 차를 크기가 다른 또는 운전자 성별이 다른 차가 앞 지르러 했다고 하여 보복운전을 하고, 윗집의 쿵쾅 소리에 분노를 하고, 다름에 대한 이해 없이 혐오를 하는데, 차의 크기와 상관없이 껴들음에 놀랐다는 사실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아랫집이기에 윗집에 소음으로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는 입장이 있고, 대다수가 자신과 같은데 소수가 다름을 표현하는 것에 배타적인 입장을 앞세우는 것이 힘이 되어 폭력으로 사용되는데 이에 대한 특별한 제재 장치가 없는 것 같다.
  세상은 다양하고 다름이 늘 공존하여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사회의 균형을 갖추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와 법이 존재하게 된 것으로 보면, 균형을 깨뜨리려 하는 자는 힘이 없는 소수가 아니라 힘을 가진 다수라고 볼 수 있겠다. 차가 끼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차선이 실선이 아니라 점선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운전하는 차 앞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 세상이 유지하려는 균형이다.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운전을 하며 차로 또는 차에 있는 무기로 힘을 과시하니 사회균형을 깨뜨리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층간소음도 그렇고 소수의 표현의지를 묵살하려는 것도 역시 힘의 차이가 불러온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 피해예방교육에서 강조한 것은 관계 맺기에 대해 사람보다 관계를 맺어가는 그 “상황”에 대해 예민성을 키우자는 것이다. 가해하려는 자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치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상대를 이용하고자 하려는 자이다. 그래서 가해자에 대한 이해보다 자신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건·사고의 내용을 잘 읽어보면 가해자가 왜 그랬는지에 대해 잘 나타나 있다. 물론 처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공통적인 요소로 분노, 보복, 혐오가 거론된다. 우리가 함께 어울려 사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분노하고 얼마나 보복심이 있고 얼마나 혐오주의를 가졌는지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은 무척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잘 지내기 위해 내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다음 펼쳐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자신의 안전을 챙기고 상대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점점 이상해지는 상황에 대한 예민성을 키워야 되는 것이다.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없고 이해시킬 수 없는 순간적인 상황에 보복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기 보단, 사회 제도적·관습적으로 용인된 것을 먼저 활용하여 위기상황을 모면할 수 있어야 겠다.  <행가래로 157호>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