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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의 시선 [160호]

작성자행가래로|작성시간18.03.21|조회수27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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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의 시선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할 수 있는 행동이 있을까? 요즘처럼 사람들의 실제 시선 못지않게 많은 촬영도구들이 우리들 주변에 있다. CCTV와 함께 더불어 차량에 부착된 블랙박스까지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저장해두고 있다. 이런 세상 속에 살고 있으면서 의외로 일탈을 꿈꾸는 자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라는 말은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뜻이 있는 것으로, 마음이 빠진 행동을 하는 사람이 종종 CCTV와 같은 그런 곳에 그 행동이 녹화되고 저장되어 타인들이 필요에 따라 찾아보게 만드는 것 같다. 사람이 없어도 CCTV가 있으면 결국은 지켜보는 이가 있다는 것인데, 그런 사실을 망각한 채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압박감만을 갖는 것도 그다지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옛날 선비들은 남이 보지 않을 때 자신을 더욱 단속했다고 한다. 혼자 있을 때 더욱 의복을 단정히 하고 자세를 바르게 했다하니 결국 보이는 눈이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계가 없더라도 우리 인간은 자신을 통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지켜보는 이가 있어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서, 지켜보는 내가 없을 때를 대비하여 기계를 장착해 두고 그곳에 내가 없어서 피해를 면했다면 지켜보는 기계가 있어도 마음이 빠진 채 악의를 실행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폭력가해자들에게 진행하는 프로그램 내용 중에 장벽세우기라는 것이 있음을 일전에 말한 적이 있다. 세 개의 장벽을 다 무너뜨리게 되면 하게 되는 것이 가해행동이며 범죄행위라고 말이다. 제일 먼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무너지고, 두 번째로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게 되고, 마지막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피해자의 저항을 무시함으로 인해 가해행위를 하게 되는 것으로 말이다(핀켈호Finkelhor 모델). 그만큼 타인의 시선이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데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행하게 되는 행동은 무엇에 의해 가능하게 된 걸까? 한동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했었지만 딱히 ‘그 무엇’ 때문에 일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문득 ‘경계교육’의 내용과 충돌이 생겼다. 폭력예방교육은 피해방지교육 또는 가해재발방지교육으로만 가면 안 된다고 전문가들이 주장한다. 피해에 대해서만 강조하여 불안감과 두려움만을 키우게 되거나 가해행동에 대해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큰 효과성을 얻기 어렵기에, 결국 관계 맺기에서 힘의 차이에 대한 배경과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이해시킬 수 있는 쪽으로 교육이 되어야 함을 말이다. 피해를 예방하면서 가해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것으로 사용되는 경계교육은 서로 저마다 안전함 또는 친밀감을 느끼는 경계가 있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가해행위를 하는 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 경계를 무너뜨려 침범하려 하고 피해자들은 그 경계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나아가 피해를 입게 되는 자들은 자신을 도와줄 시선을 기다리고 가해행위를 하려는 자들은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감추기 위해 노력하거나 아예 그런 시선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의도한 바대로 타인을 조종하려고 한다. 경계교육의 효과가 피해를 민감하게 인지하게 하고,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게 되는 것에 대해 민감성을 키워 가해행위를 예방할 수 있지만, 피해가 가해행위 초기에 그치게 되거나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에는 더 필요한 요소가 있어 보인다. 바로 제 삼자의 시선이다. 이것이 가해자들의 행위를 멈추게 하는 시선이 되는 것보다,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는 시선’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생각이 도달하게 된 것이다. CCTV와 블랙박스에 가해행위가 찍히는 것이 중요하고 가해자들이 이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CCTV와 블랙박스가 하는 역할은 바로 제 삼자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성폭력에 대해서는 친고죄도 폐지된,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신고할 수 있는 나라이다. 가정폭력이 단순히 가정만의 일이 아니고, 성폭력이 나와 상관없는 자들의 피해가 아니라는 말이다. 누구든지 관여하여 개입해야 하며 그런 상황을 목격하게 되면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는 말이다. CCTV관리자는 촬영되는 상황에 집중하여 누구라도 피해를 입는 것이 보여지면 즉시 112에 신고를 하여 확인을 요청해야 하는 것이며, 정말로는 내 옆에서 일어나는 경계침해행위에 대해 “누구든지”의 한 사람으로서 112에 신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필자가 설정된 상황의 그림을 보여주고 이런 상황을 목격하게 되면 어떻게 하겠냐고 초등학생과 성인에게 물어보았다. 과연 뭐라고 답변하였을까? 그림 내용인 즉, 성인 남자와 책가방을 맨 어린 여학생이 함께 마주보고 있다. 성인남자는 무릎을 굽혀 아이와 시선을 마주하며 미소 짓고 있으며, 치마를 입고 머리를 양갈래로 딴 여자아이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성인 남자의 손이 여자이의 티셔츠와 치마 경계사이에 머물러 있는 그림이다. 이 상황을 목격한 초등학생과 성인모두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겠다고 한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신고하겠다고 한다. 교육의 효과가 발휘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이는 성인의 답변에서 더 크게 다가왔다. 성인들은 대부분 ‘관계’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아는 사이라면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관여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정말 그럴까? 이상하게 보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는 사이라면 그 여학생의 당혹해 하는 모습을 그냥 지나쳐도 되는 걸까? 침범할 수 없는 관계의 영역이 제 삼자에게는 있겠지만, 만약 정말 그렇다면 도움자체를 요청하지 못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즉시 신고를 하겠다고 답변하는 아이들이 그래서 였을까? 그 성인남자는 모르는 사람일 것이라고 대부분이 답변을 하였다. ‘관계’를 따지는 것은 결국 어른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 상황속의 어린 여자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렇게 머물다가 떠나는 시선이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지가 담긴 ‘누구나의 시선’이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적극적으로 내가 개입하여 도움을 줄 수도 있으나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소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으로 신고라는 것이 있다. ‘상황’을 설명하고 확인해주길 요청하면 되는 것이다. 그들의 관계를 그 누구나가 확인하고 신고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상황을 설명하였는데 112에서 그들의 관계를 아냐고 묻는다면, 필자에게 꼭 알려주길 바란다.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의 시선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던 그 옛날에도 자신을 스스로 경계하였지만 그래도 역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였기에 그것을 실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해행위를 한다는 것에 민감성을 키우는 것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듯이 분명 타인의 시선은 자신의 행위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누구나의 시선’이 가해행위방지 효과를 얻는 것 이상으로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시선이 된다. <행가래로 1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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