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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안 되는데 [161호]

작성자행가래로|작성시간18.03.21|조회수26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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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안 되는데



  하나의 주제로 된 폭력예방교육을 해오면서 대상자가 누구냐에 따라 어떻게 표현하여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그간 꽤 쌓인 것 같다. 이렇게 시간이 쌓인 만큼 자신만만한 대상이 있을 수도 있는데, 필자는 더 고민이 많아져 어떤 대상도 수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건사고의 기사를 읽을 때 여러 관점에서 읽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보니, 일단 기자의 입장에서 읽어보고 그다음 독자의 입장인데, 나아가 연령별‧성별로 그 기사를 다 곱씹어 본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사건관계자 입장에서 그 사건을 떠올려보며 그 상황을 감히 완성해 보고 원인이 무엇이었을지 까지를 생각하는 것이 자동화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말에서 주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필자이다. 항상 잘 준비된 강의내용에 자신감이 붙기보다는 결정적으로 남겨줄 수 있는-광고처럼-강렬하게 뇌리에 남길 수 있는 것을 주지 못할까봐 걱정이 더 많다. 아는 내용, 뻔한 내용,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 라는 입장이 다수인 대상자들을 상대로 하기에 더욱 고민이 큰 것 같다. 그래도 늘 기승전결이 있는 강의를 하였기에 강사로서의 만족감도 어느 정도 있었다. 근래에는 법과 사회의 체계가 급변하는 듯 느껴져 이와 어울리는 것으로 모두에게 수긍을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커져가고 있었다. 일단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던 것들이 전 국민이 받아야 되는 예방교육으로의 인식이 전환된 만큼 사회적 관심은 커졌지만, 그만큼 뭔가 정돈되어 보이지 않고 세분화되고 전문화 된 만큼 모르쇠로 태도를 취해버린 분위기도 참 걱정스럽게 다가왔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그래서 그런 새로움을 느끼고 알게 해주려 애를 썼는데 과연 강의 대상자들은 어떻게 느끼고 받아드렸을까? 어느 날 우연히 필자가 사건‧사고를 접하게 되면 늘 되 뇌이던 한마디가 크게 와 닿았다. 그간 강의의 종착점은 법을 잘 압시다가 아닌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였고, 강사들이 모여 이구동성으로 귀결하게 된 내용은 유치원에서 배웠을 내용이었고, 강의 대상자 개인에 대한 이해가 없이 구성된 강의안이기에 강의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데, 이토록 다른 개인들이 하나의 마음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 그 고민의 끝이 이 말 한마디가 아닌가 싶었다. 바로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안 되는데” 이다.
  “그러면 안 돼”는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쓸 수 있는 말로 본다. 자신 스스로의 행동을 제어하는데 기준이 될 수 있으며, 타인에게는 이 말을 함으로써 관심을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 폭력의 피해는 피해자가 어떻게 대응을 했느냐로 그 옛날 시시비비를 가렸다면, 이젠 피해자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고 본다. 나 자신은 하고자 하지 않는 행동을 누군가가 하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무심코 지나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경찰에 신고를 하여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다. 혹여 나 자신이 스스로를 제어하기 위해 ‘그러면 안 돼’를 사용하여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정적 행동을 멈출 수 있는 것이다. 어떤 특별한 말이 아니라 그간 관계 속에서 배운 것을 자신과 타인의 행동을 제어하는데 활용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돼’,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너무했다’, ‘그럼 안 되지’ 등등 사건 사고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하면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가 하는 말들이다. 단순히 감탄사처럼 듣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은 하면 안 되는 것이고 다른 이들은 그렇게 행동 안 할 것이라고만 생각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 되고, 누군가에게 너무한 행동이란 생각이 든다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동의를 하고 협력을 해 줄 것 같은 행동이 아니라면 정말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기준을 모르기 때문에 범법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법과 치안은 우리들의 행동에 제약을 가함이 아닌 상식적인 범위에서 행동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테두리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법을 전공하지 않았고 법을 집행하고 수호하는 자들이 아니라고 해서 이 사회에서 살기 어려운 것이 아닌 것이다. 법을 몰라도 우리가 서로 함께 잘 살기 위해 ‘그러면 안 되는데’라고 자신에게 되 뇌일 수 있어야 하며, 누군가의 행동이 잘못되었을 때 역시 ‘그럼 안 되는데’라는 말이 토대가 되어 바로 잡을 수 있는 행동을 수행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필요한 것은 ‘용기’라고 생각했었다. 의인이라는 정의로운 사람이 예전보다 드문 것이 ‘용기’에 대해 사람들의 의식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여전히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것은 용기 있는 자들이지만 지금 사회에 더욱 필요한 사람은 ‘동기’를 가진 자란 생각이 들었다. 함께 잘 살고 싶은 동기를 가진 자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움직이고, 그들의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서로가 공감할 수 있게 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그러면 안 돼” 또는 “그러면 안 되는데”라는 말을 생활 속에서 자주 쓰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이 말에 익숙해지고 어른들이 왜 이 말을 쓰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이 말을 들은 이후에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것은 어른들 반응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그러면 안 돼”라는 말을 하게 되는 기준을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 어른들은 즉시 행동수정을 시키고 이행하는 아이들에 대해 ‘그럼 됐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무엇을 기준으로 “그러면 안 돼”를 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행가래로 1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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