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캠페인 - 소망 vs 원망 】
평소에 우리가 아이들에게 잘 되길 바라며 건내는 말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먼 미래를 위해 하는 말이기 보다는 지금 당장 알았으면 좋겠고 이행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말이 더 많다고 보여 집니다. 또한 듣는 아이의 입장에서도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먼 훗날과 관련된 충고는 남의 일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은 뭔가를 지적할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그에 대해 의미를 두고 핵심을 갖고 말을 시작합니다.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말입니다. 그 말의 모양새가 인생의 선배로서 주로 격려나 위로의 모습이지만, 때로는 비난이나 추궁 또는 윽박지르는 모습으로 비춰 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잔소리’로 분류되어지는 것에는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어떤 모양새로 이야기를 하는지가 상당한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의사를 전달하면 우리의 아이들이 흘려듣지 않고 마음 속 깊숙이 새기려 할까요?
우리 아이들이 말 속에서 느끼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원망”한다 라고 느낄 때가 바로 피하고 싶은 충고나 격려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중에서 나왔듯이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낼 때 조심하라고 그렇게 당부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우유를 꺼내다가 결국엔 그 커다란 우유를 떨어뜨리고 맙니다. 그때 우리 어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아이들 예상처럼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것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그랬지?!” 라고 말 입니다. 그래서 그 책에서는 예상 밖의 어른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아이도 혼 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어머니모습에 자신이 이렇게 과학자가 될 수있었다 라고 이야기를 소개하였습니다. 우유를 떨어뜨린 아이도 자신이 잘 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믿었지만, 그 자그마한 손으로 우유를 견뎌내기에는 실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부엌바닥에 우유가 쏟아졌을 때 우리 어른은 정말 아연실색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이가 놀랐을 거란 생각에 안쓰러움도 들겠지만 이것도 잠시일뿐, 쏟아진 우유도 아깝고 뒤처리를 해야하는 것이 귀찮고 아이가 쏟지만 않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자동적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이에 대해 다음 번에는 잘 하라는 격려의 말이 그 순간 큰 소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격려와 충고의 의미이지만 모양새는 원망이 잔뜩 담긴 모습일 것입니다. 우유를 엎지른 아이의 엄마는 그 아이가 부엌에서 한동안 쏟아진 우유로 마음 껏 놀도록 두었습니다. 이왕 엎지러진 우유, 아이의 놀이감으로 제공을 하였고, 그 이후에 아이와 함께 부엌 바닥을 치웠다고 합니다. 다양한 청소도구를 가져와서 아이에게 우유를 치울 때 적절한 것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아이는 스폰지를 선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청소가 다 끝난 뒤에는 마당으로 나가서 우유와 비슷한 모양의 그릇에 물을 담아서 떨어뜨리지 않고 잡는 방법을 엄마와 함께 찾고 연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개기로 어른이 되어 자신의 업으로 과학자를 선택하였고, 이 때의 상황이 자신에게 과학자가 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우유를 엎지른 아이의 엄마는 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요? 아이가 진정으로 다시는 우유를 엎지르지 않기를 바랬을 까요? 아니면 우유를 꺼내다 다치지 않기를 바랬을까요? 저는 후자 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옆에 있을 때는 내가 뒤처리를 해주고 보완해주면 되지만, 내가 없을 때 아이 혼자서 이와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이 즉, 아이의 안전과 아이의 올바른 판단에 대해 우선순위를 두었기에 그렇게 대응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에게 기대하는 바가 참 클 것입니다. 나의 기대에 부응하는 아이로 자라기 위해 아이들도 필사적이겠지만, 아주 사소한 일에서 아이들이 원망의 소리를 듣고 좌절을 하게 된다면 스스로 점점 자신을 작게 만들고 위축되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결국에는 사고의 체계가 스스로 무언가를 올바르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하면 안되겠다’라고 안해야 하는 행동, 규제에 걸리지 않을 행동에 대해서만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늦게 다니지 마라”라는 이야기에는 참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아이의 안전을 염려하는 마음이 가장 많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아이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에 “늦게 다니지 마라”라고 그 마음을 담아 전하는 것일 것입니다. 늦게 왔을 때 “왜 이렇게 늦게 다니느냐”라는 말도 걱정한 것에 대한 마음의 표현이지만, 아이들은 ‘늦었기 때문에’ 자신이 혼이 났다는 것만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늦게 다니지 않아야 겠다고 삶의 좌표를 설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원망을 들은 아이는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반면에 부모의 소망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늦게 들어오지 마라”가 아니라 “너의 안전이 언제나 최우선이란다”가 우리가 전해야 하는 메시지 인 것입니다. 아이들이 왜 일찍 귀가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기준이 먼저 확립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잔소리의 모양새를 한 격려를 하실 때 “원망”이 아닌 “소망”을 담으시기 바랍니다. 그 소망을 들으며 자란 아이들은 그렇게 되고자 노력하며 자신의 삶의 좌표와 기준을 확립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