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1989년 作
스펀지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성폭력 관련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보편적으로 교육에 가장 많이 쓰이는 『피고인』을 시청할까했지만, 다른 영화들은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나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창에 성폭력이라는 키워드를 넣어 보았다. 예상대로 관련된 영화들은 몇 편 없었고, 교육목적과는 전혀 다른 내용들이 대부분 이었지만 그 중에서 제일 원하는 내용이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시청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OST가 무척 유명하여 내용은 몰라도 “아~!!”하고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본 노래라고 한다. 휴버트 셀비 주니어가 1964년 펴낸 외설논쟁에 휘말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전쟁과 파업으로 혼란한 50년대의 미국사회를 적나라하게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는 전반적으로 어두컴컴했고 노동조합 선전부장 해리, 창녀 트랄라 그리고 그녀를 연모하는 조르제트를 중심으로 흘러간다.(자세한 영화정보는 인터넷을 참고하시거나 직접 시청하시길... ^^)
제목처럼 그들은 처해진 환경에서 그들만의 비상구를 찾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잘된 방법이든 잘못된 방법이든 또는 결과적으로 좋았든 나빴던지 간에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기 때문에 선택했고, 그 선택으로 행복했다가 갈등하고 슬퍼하고 바닥까지 떨어져 처절함을 맛보지만 결국에는 밝은 빛을 통해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끝이 난다.
행복이란 주관적이지만...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그 사람에게 치대고 싶어 하는 것이 욕망이라면, 나 또한 그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 치댐의 정도는 내가 정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계속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때 나의 선택에 대한 몫으로 잘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덜 불행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비상구를 빠져나올 수 있을까?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혼자 통과 할 것인가? 바닥인 상황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인가? 모든 것이 고민되기 시작했다. 내가 그들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왜 그들은 저런 모습으로 까지 치닫게 되었을까?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까? 똑같을까? 달라질까? 등등 수없는 물음표가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 물음표들은 상담 할 때 드는 생각들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내담자들도 비상구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상담을 요청하지만, 단지 하나의 수단일 뿐 정작 해답은 그들 스스로 가지고 있다. 나는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게 돕고 그 선택에 대해 극복할 힘을 키울 수 있게 지지해 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역할은 어느 때나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며 제일 기억에 남는 대사는 "Don't cry." 트랄라가 성폭력 피해를 입어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보고 조르제트가 우는데 안아주며 하는 말이다. 이 장면을 보며 트랄라는 조르제트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 울지 않고, 잘 살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로 느껴졌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추락과 비상은 한끝차이라고 생각하며 49 vs 51의 2% 차이의 선택이 나를 웃게도 울게도 할 수 있지만, 극복할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