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아십니까?
스펀지
『오해』가 뭘까? 사전에 명시된 정의를 보면, 『오해』는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뜻을 잘못 앎. 또는 그런 해석이나 이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뜻을 이해하는 것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각자의 경험을 통해 단어를 해석한다. 나는『오해』라는 단어에 대해서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는데, 훔쳤다는 누명에 씌였거나 나는 그렇지 않은데 다른 사람의 이간질 등으로 내가 하지 않았는데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라고 알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불러일으킨 것인 줄은 알지만, 호의를 가진 마음 또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웠다.
『오해』를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내 속상한 마음과 상대가 속상했을 마음이 뒤섞여 폭포수가 되었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떻게 해야 될까? 등등이 머릿속에 빠르게 교차하며 『오해』에 대한 변명을 쏟아 내었다. 그렇게 변명을 쏟아 내고 그럭저럭 지나간 것 같은 지금... 두 가지 고민이 생겼다. 첫 번째는 ‘상대방이 나에 대한 『오해』를 다 풀었을까?’이다. 내 멋대로 ‘마음을 이야기 했으니까 이해해 주셨겠지.’라는 안도감으로 막연한 추측하였다. 두 번째는 상대방이 나에 대해 ‘『오해』를 하지 않게 하려면?’ 내 마음을 적어도 부정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느끼기만 했지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해결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꼭 생선이 먹고 싶어 사왔지만, 징그러운 비늘을 손질하기 싫어서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것과 같은 심정이다. 그리고, 더 갑갑한 건 내가 상대를 배려한다고 했던 배려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더 편하고자 한 이기적인 마음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진짜가 아닌 나에게 살짝(?) 퇴색된 마음. 아이고~~ 산 넘어 산이다.
나는 산 넘어 산을 매일 오르고 있다. 길을 잃었는지 정상에 얼마나 남았는지 몰라 헤매고 있지만, 한 가지 반가운 건 오르고자 바동바동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애를 쓰면서 왜?에 생각하니 나의 솔직함은 사실에만 국한되어 있어 감정 또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 솔직한 사람이 아니였다. 솔직한 척 하는 사람이었지... 이렇게 인지하고 나니... 내가 의도하지 않은『오해』의 상황이 이해가 되어 더 자책이 들어 속상하였지만, 계속 자책감에 매달리기만 한다면 해결은커녕 앞은 보지 못하고 고립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직면이 필요할 것 같았다. 고립의 두려움과 직면의 두려움이 반반으로 팽팽하게 맞서있지만, 곧 달콤한 결과를 맛보기를 소원한다. 그 소원이 이루어져 나만이 아닌 내 주위 사람들도 나로 인해 더 행복해졌으면 하는 더 큰 소원을 꿈꾸며... 과정의 힘듦을 날려 보내야 겠다.
문득 이런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자란 것 같은 느낌. 무럭무럭 자라기만을 기대한 나에게 서서히 자랄 수도 있다는 또 하나의 가르침을 얻었다. 이정도면 나.. 나이는 허투루 먹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