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돌고래
‘가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면 좋을까? 상담에 대한 틀을 만들기 위해 얼마 전부터 가족복지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그에 맞물려 새로 시작한 가족들에 대한 드라마를 보면서 이 질문이 시작되었다. 나는 스스로 독립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만큼 가족들은 다만 내가 잘 지내기 위해서, 그들도 잘 지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나의 의무로써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성장하는 만큼 그들도 성장해야 하며, 그들이 성장한 만큼 나도 성장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조금씩 피부로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만 생각하던 예전보다는 가족 안의 나를 생각하느라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친하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가장 잘 안다고 하지만, 또 가장 잘 모르는... 그러면서도 가족을 이야기 하지 않고서는 내가 정의될 수 없는 아이러니한 관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그렇게 나를 몰라 서운할 때도 있고, 나와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티격태격 싸우게 되니... 어떤 집단들보다는 한마디로 표현될 수 없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서 가족과의 거리감이 생기면 좀처럼 좁힐 수 없게 되는 이유가 함께 산 세월로 인한 근자감(뜻: 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우리 가족을 제일 잘 알고 있어.’ 또는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할 거야.’등으로 옭아매고 있는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맞지 않는 순간이 오면 배신감으로 남에게 하는 것의 배로 막말하고, 싸우게 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배신감은 ‘믿음이나 의리의 저버림을 당한 느낌’(출처: 네이버 국어사전)이기에 친밀한 사람에게서 더 크게 느끼는 감정이다.
상담원이 되었을 초기에는 가족들이 서로를 비난하고, 미워하며 크게는 폭력까지 행사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고, 겪으면서 자신들이 좋다고 만든 가족의 문제를 생판 모르는 남에게 수습해달라고 하는 것으로 여겨져 이해하기 힘들었다. 모든 일은 결자해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에게 가족상담은 분명 버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점점 여러 가족들을 만나고, 나도 내 가족과 부대끼고 살면서 가족의 문제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들끼리는 서로 할 수 없는 딱 한 가지가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로를 제3자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어 관대해질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상담원으로써의 역할은 서로를 대신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가족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해주는 것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게임』이라는 드라마에서 “情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자신의 생각을 입으로 손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전했을 때야 말로 존재하게 되는 거야.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쌓아가지 않으면 강해지지 않는 귀찮은 거야.”라고 주인공이 말한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럼 이렇게 귀찮은 것을 왜 해야 되냐고 반문하고, 또 반문했다. 답이 나오지 않아 답답해서 미칠 지경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늘 답은 허무하게도 간단하다. 그냥... 같이 사니까... 밉던, 곱던 같이 평생 엮여져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情을 쌓기 위한 노력을 해야 된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情은 좋은 것만 나누어선 강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쁜 것도 함께 나누어야 쌓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족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며, 좋은 것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보아주며 그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티격태격하며 보듬어주며 살아갈 것이다. 그게 바로 가족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