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추억
애오라지
옛날과는 달리 요즘 버스는 단말기에 카드를 대면 ‘삑’ 소리를 내거나 ‘감사합니다’의 소리를 내며 요금이 결재된다. 편리한 시스템이 버스에 도입되었기 때문에 사람들 대부분 버스요금을 카드로 지불하고 있는데, 간혹 현금으로 지불하는 사람들도 있다. 버스요금은 일반거리를 기준 성인 1,200원으로 만약 2천원을 넣었다면 백원짜리 8개를 거슬러 준다. 이렇게 차액을 백원짜리로 돌려줄 수밖에 없는 버스요금 통에 5천원을 넣었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작년 연말쯤에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학생이 버스를 타고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뜸을 드리다 5천원짜리 지폐를 넣고 기사 아저씨에게 5천원을 넣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난 그 짧은 순간, 버스 승객으로써 예전에 목격했었던 똑같은 상황들을 떠올리며 아무 말 없이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거나 버스기사님의 사람 무안하게 하는 면박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기대는 빗나가고 아저씨의 말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하면 될까?” 또 순간, ‘기사님이 학생을 비꼬는 건가?’ 라는 생각이 스쳐 학생을 보니 아무 말이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기사님은 학생에게 버스요금 통에서는 백원짜리밖에 안 나온다는 것을 알려주며, 동전을 세어가며 거슬러 주시면서 “이런 것도 하나의 추억이지 뭐~ 동전이니까 흘리지 않게 주머니에 잘 넣어둬~”라고 말해주었다. 비몽사몽한 출근길에 갑자기 머리가 반짝하는 느낌을 받았다. ‘추억이라...’ 그 학생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멋쩍게 웃으면서 빈자리를 찾아가 앉았지만 나와 같은 예상을 했으나 예상과 다른 모습에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몰라 그랬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기억이 아닌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 그냥 단순한 기억이 아닌, 나쁜 기억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추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기억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추억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이나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해서 나는 기억을 과거에 나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 중에 떠오르는 것이라 생각하고, ‘추억’은 나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 중에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웠던 일들이 간혹 뜬금없이 생각나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득 나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만 애쓰고 있던 것은 아니였을까?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추억‘이라는 선물을 받았을 때, 제대로 고마움을 표시했었을까? 아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학생처럼 자신에게 나쁜 기억이 되지 않기 위해 내 할 도리는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최대한 미안한 말투로 이야기 했을 것이고, 그 학생처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고마움을 말할 타이밍을 놓쳤거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추억’을 주고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나쁜 기억에 매달려 좋은 기억을 볼 수 없는 것도, 좋은 기억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것 모두 답답하게 느껴진다. 안타깝고, 답답한 느낌에서 벗어나려면 이제부터라도 ‘추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추억’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렇다면 서로서로에게 ‘추억’을 주고받으려면 어떻게 해야만 좋을까? 내 하루가 소중하듯, 누군가의 하루도 소중하다는 것을 늘 생각하면 어떨까? 상대의 하루를 망치면 나의 하루도 썩 유쾌하지는 않을 터... 누군가의 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내 하루도 함께 소중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만 좋은 것은 진정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동안 쌓였던 ‘추억’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추억’을 함께한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전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