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모던보이'를 보고나서 ♥
라일락
영화는 말쑥한 차림의 청년이 외제차에 기대어 뭇 여성의 시선을 받으며 해죽 웃는 모습으로 시작하였다.
비밀구락부에서 보게 된 그녀의 춤과 노래에 홀딱 빠져 장난처럼 시작된 그녀와의 동거, 그리고 그녀가 싸준 도시락이 폭발하게 되고 집마저 몽땅 털리지만 끝까지 그녀의 자취를 찾아 헤맨다.
그리고 다시 만난 그녀의 손목을 물며 티격태격하다가도 그녀의 "계란말이 해 준 게 잘못이야!"라는 말 한마디에 스르륵 녹는 그의 마음은 또 다시 그녀에 대한 믿음을 안고 행복한 동거를 시작하지만, 또 다시 그녀는 그를 배신하게 되고, 또 다시 그는 그녀를 찾아 헤매다가 독립운동가라는 그녀의 정체보다는 그녀에게 남편이 있다는 그 한 가지 사실에 휩싸여 고통스런 고문을 받아야 하는 이유조차 중요하지 않은 순진하다 못해 바보같은 사랑에 온 몸을 던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미친 놈'
다시 그녀를 만나고 자신이 그녀의 남편 테러 박(나중에 알게 되지만 테러 박은 사람이 아닌 폭탄이 장착된 연미복이었다.)이라며 그 옷을 입고 기념식에 참석하지만, 폭탄은 안 터지고 태극기만 펄럭이게 되어 잡혀가는 와중에도 그는 해죽해죽 "그녀는 내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어!"라며 웃는다.
시종일관 멍하니 영화만 응시하다 어느 순간 눈물이 핑그르 돌았는데, 지금 이 순간 그녀에 대한 끝없는 그의 마음에 미친놈은 온데간데없이 숨이 턱 막혀 온다.
또 다시 그는 그녀를 찾아 헤매다 그녀를 만나게 되지만 그녀는 '살고 싶다.'는 한 마디와 함께 그의 가슴에 불꽃으로 살게 되고, 자신의 점괘가 가는 곳마다 망한다며 총독부에 근무하는 것이 조선의 독립을 위한 것이라던 그가 진짜 독립투사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미칠 정도로 한 가지에 꽂힐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복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도 여전히 그녀의 먹먹한 '개여울' 노래는 순간순간 내 입가에 머물고, 가슴을 막막하게 만든다.
【 김소월 】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 포기가 돋아 나오고 / 잔물이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