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의 감옥❜
❦ 구들짱
한 때는 나이를 먹으면 그냥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결혼과 함께 어른으로 모셔야 하는 시어머니를 뵈면서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하였다.
내 머릿속의 어른은 아랫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고,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하고,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해야 하는 등등…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범주에 들지 않는 시어머니라고 끊임없이 ×표를 치며 힘들어하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러고 보면 내 머릿속의 감옥은 어른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아이, 남편, 며느리, 형제․자매, 친구, 선생님, 동료 등등…, 너무도 많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불만을 표현하고, 내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힘겨워하며 ‘왜 너는 그래’만 읊조렸었다. 아니 감옥인 줄도 몰랐다. 나만 옳다고 생각했었으니까….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 보다는 도망치는 것을 일상으로 삼았다. 외면하는 게 나를 위한 유일한 선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내가 보는, 내가 아는 세상 외에 다른 세상은 없음을 굳게 믿으면서 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엄청난 착각 속에서 그들을 지워가며 살았다.
내가 생각한 어른과는 거리가 먼 어머니와 같아질까 두려워 미리 아이에게 독립을 강조하면서 남편에게는 어머니처럼 혼자되지 않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입버릇처럼 되뇌며 살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건 아닌데…’싶은 생각에 고개를 돌려 주위를 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물 안 개구리가 다름 아닌 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동안 얼마나 황당하고, 기막히고, 억울하고, 섭섭하고, 짜증마저 났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오늘 어머니께서 신문지에 둘둘 말은 뭔가를 꺼내더니 슬며시 내미셨다. 화려한 무늬의 손지갑이었다. 신문지 속 화려한 지갑이 어머니 마음이라는 생각에 그저 “감사합니다”라고 밖에는 할 말을 잃었다. 그동안 지 잘난 줄만 알고 뻣세기만 한 며느리가 얼마나 버거우셨을지, 마음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시는 수줍음이 신문지 속 화려한 지갑과도 같아 죄송함에 목이 메어왔다.
어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그냥 어머니셨다. 내가 부정하고 부인했을 뿐이었다. 내 생각이 만들어낸 감옥 속에서 허우적대며 스스로 힘듦을 선택했던 내 자신이 안타깝다.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남편에게 원망의 화살을 쏟아 부었던 나를 참아주고 받아주느라 힘들었을 남편을 생각하니 미안함과 고마움에 가슴이 벅차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설렌다. 그동안 지은 죄(?)가 있어 한꺼번에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쑥스럽지만 조금씩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이제는 나이 먹는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른은 역시 어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