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준비❞
✿구들짱
점심시간을 주제로 글을 써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 정도가 아니라 막막하기까지 하였다. 그동안 주부라는 명찰을 갖고 있어 시작된 점심준비였기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의 차지가 되었고, 뒷정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의 차지가 되었을 뿐이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백과사전 두께의 요리책을 심심할 때마다 눈으로 익히고, 생각으로 만들기를 참 많이도 했었다. 제대로 된 도구, 재료가 없어도 비슷하게 만들 줄 알았고, 정식으로 음식을 배우지 않았어도 그런대로 모양을 갖출 줄은 안다고 생각했다. 음식 만드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을 뿐더러 있는 재료만으로도 뚝딱 만드는 것을 보면, 음식을 잘 만들어서라기보다는 어쩌면 맛있게 먹어줬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내가 음식을 먹으려고 하기 보다는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는 그저 최소한의 것들로만 밥상을 차리는 소박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뿐, 음식 만드는 즐거움을 잊은 듯 살고 있다. 시어머니께선 본인이 드시고픈 것은 직접 해서 드시고, 온 가족이 어울려 식사를 하는 건 일요일 하루 뿐이고, 식사시간 또한 각자 다르다보니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별 생각없이, 별 부담없이 시작된 점심준비 시간이었다. 그런데 상담소 식구들은 정말이지 너무도 맛나게 먹어주는 것이었다. 짐작으로(나만의 노하우로…) 간을 맞추는 국적불명의 음식일지라도 아무 불평없이 그릇을 비워줬기에 그동안의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내가 만든 음식이 맛있었던 것이라는 대단한 착각을 하면서 더 이상의 발전(?)을 모색하지 않았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짐작만 할 뿐이지 물어보지 않았다. 무엇이 먹고 싶은지는 어쩌다 물어보기는 했다. 모두에게는 아니지만 말이다. 여유가 있으면 조금 더 넉넉한 시간으로 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점심시간조차 바쁜 소장님께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이면 좀 더 신경을 써서 음식의 가짓수를 늘리기도 하면서… 자주 먹어서 질렸다고 하면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것일지라도 잠시 멈추는 것으로 나름 애쓴 것도 사실이다. 집에서 보다 더 신경 써서 음식을 하고 있는 게 티가 났는지는 모르겠다. 상담소에서 만든 음식이 내가 했어도 맛있게 느껴져 집에서 똑같이 하면 상담소에서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 희한한 일도 경험하곤 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엔 냉장고를 비우기 위한 식단을 짜려고 한다. 주말동안에 야채가 잠자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나만의 원칙으로 혹여 먹지 못하고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음식도 그날 다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만 하는데 이는 매일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은 나의 성격 탓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상담소 냉장고는 덩치만 컸지 속은 가볍기 이를 데 없다. 이 모든 것이 내 생각이 옳다며 했던 것인데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나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는 한 번도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의견을 나누는 시간도 가져봐야겠다. 그동안의 나의 횡포(?)에 지쳤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또 하나 그동안 하지 않았던 주간 식단표를 짜보려고 한다. 그날그날 생각나는 대로 메뉴를 정했었는데, 집에서처럼 일주일치 장을 봐서 좀 더 체계적으로 하게 되면, 점심준비 시간도 단축되고, 마음이 바빠 허둥대는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그동안 하지 않은 것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에 자유롭지 못함을 통감한다. 마음 없는 음식을 그동안 맛있게 먹어준 식구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담을지 고민하고, 보다 즐거운 점심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