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동안의 준비❞
✸구들짱
친정어머니께서 쓰려지셨던 때가 지금의 내 나이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술도 못할 정도로 심각했었던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내려오시면서 자식들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던 처음과는 달리 차츰 기억을 되찾으며 당신만의 의지로 일어나셨고, 이후 지금까지 30여년을 살아오셨다. 하지만 반복된 골절사고로 더 이상 운신을 못하다가 요양원 신세를 지시던 중에 하루아침에 말을 잃고, 코에 영양공급호스까지 끼게 되셨다. 어머니를 보내드릴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던 아들은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야 한다고 목소리에 힘을 주고, 어머니의 인권도 존중해야 한다는 딸은 더 이상의 의료적 처치는 하지 말아야 한다며 형제간에는 의견충돌이 생겼었는데 기적처럼 어머니께서 호스를 빼고 음식을 삼키기 시작하면서 형제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한 침묵의 시간이 돌아왔다.
일련의 상황이 지나고 나니 지금의 내 나이였던 어머니는 쓰러지셨던 그 이후의 삶을 어떤 심정으로 사셨을지 새삼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이 오십이 조금 넘은 지금의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무엇이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당시 어머니는 몸 한쪽이 마비되어 그 무엇도 쉽게 하지 못하셨음에도 운동도 열심히 하고, 집안일도 도맡아 하셨지만, 정작 당신이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을지 그 당시 나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말씀도 못하시고, 치매증상도 있으셔서 물어봐도 대답을 들을 수도 없는데…. 그래도 의사소통이 원만할 때는 휠체어신세이긴 해도 가족들과 여행도 하시고, 의사표현도 명확하셨는데, 지금의 어머니는 소통도 못하고, 그저 천정만 응시하는 게 전부인 세상 속에서 인간의 기본 욕구만 남은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머니와 같은 상황이라면 연명치료와 조용히 삶을 정리하는 것 중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을까를 생각해 보지만 결코 지금의 어머니와 같은 모습은 아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생이 연명치료에 마음을 더 쓰는 것을 보면 아마도 어머니에게 빚진 마음이 있거나, 받고 싶은 것이 있어서는 아닐까 싶은 생각은 든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갖고자 지금의 힘겨운 모습으로나마 어머니가 곁에 계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해가 되었기에 형제들 분쟁의 중간에서 그들의 마음을 받아주기를 반복했었는데 마침 최악(?)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간 형제들을 보며 마음을 정리하고, 의견도 조율할 시간을 어머니께서 주신 것만 같다.
그간의 일들을 겪으며 더욱 드는 생각은 온전한 정신일 때야 내 뜻을 자식에게 밝히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라도 내 뜻이 관철되도록 지금부터 자식에게 제대로 밝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어머니가 쓰러지시기 전까지는 한 번도 아픈 모습을 뵌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셨던 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 또한 건강을 자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 삶은 내가 선택한다는 말은 죽음 또한 내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의 경우 내가 선택하고 싶은 존엄사의 사전적 의미에 대해서 찾아보니 '불치의 병이나 장애로 인해 의식 불명이나 심한 고통 상태에 있는 환자에 대하여 연명만을 목적으로 하는 치료를 중지하고 인간으로서의 명예를 유지하면서 죽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견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존엄사를 일부 허용하고 있으며, 사전의료의향서⁺(임종이 임박했을 때 인공호흡·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 투여 등의 연명의료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문서)를 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말뿐 아니라 서류로 남긴다면 보다 명확하게 내 뜻이 전달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에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어머니의 일을 겪다보니 더욱 확실해진다. 오늘도 힘겹게 하루를 살아내셨을 어머니의 얼굴이 선하게 가슴에 얹힌다.
(⁺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