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하기 나름❞
✸구들짱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와 단 한 순간만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사도'의 이야기를 영화로 보았다. 완벽한 세자가 되기를 바라는 '영조'의 기대에 완벽히 따르고자 했던 '사도'의 진심이 외면되면서, 실망과 원망이 엉키며,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고, '사도'가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영조'가 아버지의 모습으로 아들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너무 가슴이 아팠다. 좀 더 일찍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자 했었더라면 참담한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조'의 모습은 내게도 있었고,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상담공부를 시작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내 눈높이에서 아이를 보면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한 발을 내디디게 하기 위해 채근하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한테 맞지 않는 나의 욕심과 기대가 아이를 멍들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 아이를 보니, 아이 스스로 하려는 의욕보다 야단맞지 않으려는 모습만을 볼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내가 했던 것은 완벽하고자 했던 욕심과 기대를 버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우선 일상의 시간표를 빡빡하지 않게 짜는 것부터 하였다. 매일 할 일과 주말에 해도 되는 일을 나누었다. 아이와는 매일매일 눈 맞추고 얘기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기 위한 시간표도 짰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그 다음이 되어야 하기에 우선은 아이 얘기를 듣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고 했던 것이다. 아이의 얘기를 쓸데 있는 것과 쓸데없는 것으로 분류하지 않고, 무슨 얘기 던 귀기우려 끝까지 들으려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조잘조잘 얘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일상을 나누다 보니, 아이의 생각과 갈등도 엿볼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무엇을 도와주고, 무엇을 놓아둬야 할지도 알게 되면서 그 누구보다 내 자신이 한결 편안해지는 선물까지 덤으로 받고 있다.
아이는 부모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믿는다. 채근하는 말이 아닌 보여지는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은 달라진 아이의 모습을 통해 확인하니 말이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처럼 나 또한 부모님의 좋았던 모습도, 싫었던 모습도 내 안에 숨어 있다가 순간순간 같은 모습으로 내 아이를 대하고 있음에 놀랄 때가 있다. 그렇게 내 모습도 대물림된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아이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나를 다지게 된다. 아이를 믿고 지켜봐주는 것뿐 아니라 나부터 실천하는 모습이 아이 스스로 하려는 의욕과 용기를 갖고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말 한마디, 내 행동 하나하나에 따라 아이의 표정이 달라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확인하는 만큼 오늘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무한한 신뢰와 격려를 아낌없이 나눌 것이다. "넌 할 수 있어."라고 말이다.
영화 속 아버지와 아들의 가슴 시린 관계를 보며, 나와 아이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확인하다 보니, 아이는 부모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다시금 가슴에 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