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애오라지
"잘 들어. 인간이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야. 절대로 그러지 못해. 물론 사실은 하나뿐이야. 그러나 사실에 대한 해석은 관련된 사람의 수만큼 존재해. 사실에는 정면도 없고 뒷면도 없어. 모두 자신이 보는 쪽이 정면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야. 어차피 인간은 보고 싶은 것밖에 보지 않고, 믿고 싶은 것밖에 믿지 않아." by 미야베 미유키 『모방범』
나는 내가 보는 쪽이 정면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밖에 믿지 않는다. 나도 그렇고, 상담소에 찾아오는 내담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내담자들과는 이야기 나누면서 더 확인하게 된다. 내가 보는 쪽이 정면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건 나 혼자일 때만 해당되는 것으로, 누군가와 관계된 순간에는 내 것이 정면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귀 기울이고 인정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의 정면은 상대에게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을 하다보면 상대와 소통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한 호소를 자주 듣는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상대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속상함, 억울함, 분노 등의 자신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낸다. 호소내용을 듣고 묻는다. "상대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는지 알고 있나요?"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예요!!" 라고 답변한다. 여기서도 상대가 직접 본인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있는 상대의 모습을 추측하여 말하는 것이다. 상대의 진심을 알기는커녕 들어볼 마음조차 낼 수 없는 것으로 상담자인 나는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먼저 당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에 집중하면 어떻겠느냐고 권한다. 내 감정을 배제하고 상대를 온전히 그 사람 자체로 바라볼 마음을 내지 못한다면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먼저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지를 결정해야 그 다음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나 자신을 내 스스로 바꾸려는 것도 힘든데, 내가 아닌 상대를 바꾸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 것이라고 맞장구 쳐 준다 해도 상대인 본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오해하고, 거부한다. 내 정면을 바꾸라는 것이냐고...
아니다. 내 정면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다. 내 정면이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 이유를 찾으면, 내 정면이 다른 방법으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같은 의미의 말을 다르게 표현하여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는 왜 빨래를 바닥에 그냥 벗어 놓는 거야!!"를 "너의 빨래는 여기 바구니에 넣으렴."이라고 하는 식이다. 내 정면이 옳으면 그 옳은 것을 계속 주장하는 하는 것이 맞다.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상대의 눈높이와 생각에 맞춰 내 주장을 관철시키면 되는데, 관철시키는 것을 내 눈높이와 생각에 맞추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계속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자신의 정면을 주장하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주장한다는 것은, 타협할 여지가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주장을 잘 표현하기만 한다면 그 이전보다 내 정면에 확신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방범』 책속의 등장인물이 생각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이제는 그것을 한 단계 뛰어넘는 것이 필요하다고 평범한 일반 성인여성 그리고 가정폭력‧성폭력 상담원으로써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