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애오라지
당신이 꽤 오래가는 감기로 애를 먹으며 그럭저럭 버텨보다 낫지 않아 병원을 찾았더니, 불치병으로 남은 생명은 길어야 반년, 자칫하면 일주일 후도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아무것도 귀에 들리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나와 똑같이 생긴 악마가 찾아와 제안을 한다. "이 세상에서 뭐든 한 가지만 없앤다. 그 대신 당신은 하루치 생명을 얻는 겁니다."라고... 당신은 어떠한 선택을 하겠는가? 주인공도 나도 여기까지만 들었을 때는, 세상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으니까 -바퀴벌레 같은 나쁜 해충 등- 그런 것으로 정하면 내 생명은 계속 연장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기뻐했다가 안타깝게도 뭐든 한 가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악마가 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약간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없애는 것은 주인공의 분위기를 보고 정하는 것으로, 그건 주인공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악마의 마음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주도권이 악마에게 있다 해도, 생명이 하루씩 늘어난다는데 솔깃하지 않은가? 나도 솔깃한 기분을 느끼면서 악마는 나에게 무엇을 없애라고 할까에 대해 생각하다 없애야 할 것들은 나에게 있어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의미 있는 한 가지와 나의 생명을 바꾸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나에게 소중할까하고, 나는 어느 정도까지 얼마나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악마는 주인공에게서 처음에는 전화를 사라지게 했고, 그 다음 영화, 시계, 고양이를 차례대로 사라지게 했다. 점점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주인공의 마음을 통해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필요할 때를 느끼면서 주인공은 소위 말하는 멘붕(: 멘탈붕괴)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여기서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은 주인공이 자신에게 없어진 것들에 대해 잊고 있던 의미를 생각해 보고,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나를 주인공에게 이입하여 나를 이루고 있던 것들에 어떠한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를 살펴보기로 했다. 우선 악마가 나에게서 없어지게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물건 등에 의미를 잘 두지 않는 나의 평소 태도에서 의미 있는 것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으나, 이런 나에게도 집착하는 물건이 있다. 집착한다는 것은, 매일매일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뜻으로 여기기에 첫 번째로 종이와 펜이 생각났다. 무엇이든 생각나는 것을 정리해야 하는 성미로 인해 늘 가방에 공책과 펜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이와 펜은 의미는 있으나, 추억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다른 것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이 나지 않았다. 주인공처럼 전화, 영화, 시계, 고양이에 나는 의미를 두고 있지 않으며 추억은 더더욱 없다. 생각보다 의미 있고, 추억 또한 있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악마에게는 쉬울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여기서 나는 내가 그동안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에 의미를 희석시키고, 추억을 잊어버렸는지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악마 또한 나에게 생명과 바꿀 것이 없으니 그냥 죽으라고 한다면, 얼마나 난처할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의미 있고, 추억이 있는 것을 많이 잊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내가 만나는 내담자들은 힘들고 아프고 슬픈 것만을 떠올리는 것을 우선하고 열을 올린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것'이 뭘까? '추억'이라는 것은 뭘까? 죽기 전에 생각해볼 일을 지금 사는 동안 생각해 본다면,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것에 대해 차근차근 정리하며 그것이 나에게 주는 또는 주었던 행복을 다시금 느끼며 그것을 에너지 삼아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는 마음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마음에는 약을 발라주어야 싹 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