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
애오라지
상담소에 근무한지 올해가 횟수로 10년째이다. 횟수라고는 하나, 한 자리에서 두 자리 숫자로 바뀐 지금이 이전보다 마음이 편한 것 같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상담소에서 얼마나 근무했는지 질문 받으면 불편한 마음이 들어 쭈뼛거리며 말하였는데, 그것은 그만큼이나 일한 사람으로 안보면 어떡하지? 나를 부족하다고 여기면 어떻게 하지? 등등으로 내가 내 스스로를 평가한 것에 대해 상대도 나와 같이 생각할까봐 전전긍긍했기 때문이다. 무언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어야 할 것 같고, 무언가 잘한다고 인정받아야 되는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내 연차에 놀라워하는 만큼의 무언가가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강박이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일을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 그만큼의 기간에 한 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내가 나를 평가한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는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올해가 되어 갑자기 나를 자유롭게 해주자는 깨달음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숫자의 개수가 바뀐 이상,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더 들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미국드라마에서 한 부서의 팀이 10년 동안 많은 일로 위기와 아픔을 함께 겪고 기쁨과 행복 또한 함께 나누면서 유지되고 계속적으로 일하는 것에, 일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다른 부서에서는 없던 최초의 일로 자축하며 앞으로 서로 도와 잘하자는 다짐을 하는 것을 보고 영향을 받아 내 생각을 바꾸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부정한다 해도, 내가 여기에 있었다는...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음에도 그 변하지 않는 사실에, 강박으로 회피하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하는 상담소 식구들과 내가 만난 사람들 모두를 부정하는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부족하고, 후회되는 등으로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나의 가장 최선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하기 위한 기본만은 늘 기억하고 다져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지난 9년을 되돌아보면, 속속들이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완전하게 잊은 기억도 있고, 언제가 언제였는지 헷갈릴 때도 있으며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과 반대로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 그리고 순간의 상황과 그때의 감정들이 조각 조각되어 불현 듯 또는 상기시켜야만 기억되곤 한다. 기뻤던 것도, 슬펐던 것도, 싫어서 미치겠던 것도,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부끄럽고 창피한 것도, 엄청 재미있던 것도, 신났던 것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도, 서운했던 것도, 반항한 것도 등등의 것을 우리 상담소에서 경험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곳에서 경험했더라면, 이만큼 잘 정리하고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여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무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다.
그리고 매일 예상할 수 없는 사연을 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해 대기하고, 준비하는 긴장상태에 놓여있어도 세월이 준 무게감으로 잘 버텨낼 수 있다는 믿음이 내 스스로에게 생긴 것 같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세월의 무게로 배운 기본원칙이 내 뼈대가 되어 자리 잡고 있으니 이제부터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려도 되겠다고 내 마음껏 결론지었다.
올해는 작년과 비슷할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많은 변화가 있을지, 어떤 일들이 생길지, 누구와 만날지 등등 알 수 없는 것들 앞에 놓여있다. 무언가는 예상할 수도, 다른 무언가는 전혀 예상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라면 그 무언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함께'라는 것으로, 그 무언가를 잘 해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