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너, 우리는 가족❞
✿ 구들짱
요즘 내게는 버릇이 생겼다. TV에서 부부가 함께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바로 채널을 돌리는 것과 청소를 하다가도 소파에서 리모컨 운전만 하는 남편을 보면 '왜 나만 바쁘지???' 속으로 되뇌며 순간 얼음이 되는 것이다. TV속에는 부부가 있지만 우리 집에는 모자(母子)만 있는 것 같은 생각을 자주하면서 생긴 버릇으로 순간적인 짜증은 내 탓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애꿎은 채널만 돌리거나 눈만 흘길 뿐이다. 지금까지의 나는 '남편은 바쁘니까, 내가 하는 게 빠르니까, 해 줄 수 있으니까, 우리 엄마도 그랬으니까…' 등등의 이유로 내가 하는 게 당연하다는 최면을 스스로에게 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남편에게 "왜 나를 도와주지 않느냐"고 되묻는다면 얼마나 황당할지를 아는 만큼 화를 낼 수도 없다. 그동안의 나는 왜 여러 이유로 나를 부추기며 혼자 다 하려 했을까를 생각해 보니, 엄마이고 아내로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건 가족을 위한 일이라는 마음이 컸던 탓이다. 그런데 한해 두해 지나면서 가족을 위한 나의 마음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내가 해야 하는 당연함만 가족들의 머릿속에 자리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맞벌이 아내가 남편보다 5배 더 집안일을 한다는 여성가족부의 통계 기사를 보면서 시간이 지나면 가족들이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깊은 깨달음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내 생각에 변화가 생기다보니, 주변에서 심심찮게 나와 비슷한 경험들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누군가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남편에게 이유를 물으니 분리 통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데, 그건 아마도 '몰라서'가 아니라 '하기 싫어서'라는 생각에 평생 한 번만 도와주면 되는 일이라면 도와주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기에 더욱 화가 난다 하고, 누군가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집이 더럽다느니, 음식 만드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느니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는 남편에 대한 불만을 호소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 결혼하고 나서 있었던 일도 생각난다. 액자를 걸기 위해 벽에 못질을 남편에게 부탁했으나 남편은 차일피일 미루며 액자가 한 달 이상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적이 있었다. 물론 내가 할 수는 있었지만 집안일 동참에 의미를 두려했던 것으로 이에 대해 시어머니께 불만을 토로했을 때 하셨던 말씀이 지금껏 생생하다. "뭘 시키면 미루기만 해서 내가 다 했다." 안하는 게 당연하고, 뭐든 어머니가 다 하셨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시어머니와 다르기에 남편이 '저걸 언제 해주나' 두고 보는 게 아니라 해 줄때까지 기다렸고, 그 이후에는 남편이 알아서 할 수 있게 했지만….
그런데 남편에게는 그리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만큼은 시어머니와 같은 모습인 나를 보며 생각이 많다. 그 아들이 자라 누군가의 남편이 되고, 또 다시 그 아내들의 불만을 반복시키는 주모자가 바로 내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남편보다 아들이 집안일에 동참하도록 하고 있지만 여전히 휴일에 종종거리는 건 나뿐이라 순간 멈춰 서서 '이게 뭐야???' 혼자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깊은 한숨과 함께 나를 다독인다. 남편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만큼 아내인 나의 생각이 변했음을 먼저 인정하고, 그런 내 생각의 변화를 남편이 받아들이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나 혼자만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누구든 하는 게 당연한 것임을 알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아빠가 자진해서 자기 속옷과 양말을 빨래바구니에 갖다 놓는 모습을 본 아들이 신기해하며 놀랍다고 표현하던 날, 긴 한숨으로 나를 달랬지만 이렇게 하나씩 하다 보면 집안일은 누구만 하는 게 아니라 누구라도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임을 기대한다. 가족이니까 함께 일하고, 함께 쉬는 것이 당연한 그날까지, 그래서 서로 함께 하는 즐거움을 덤으로 느끼게 된다면, 훗날 아들의 관계 맺기도 더욱 훈훈해질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