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재인식과 가치 있는 삶
-소수의 사랑과 이해와 인정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다-
흔히 관내 학교 수업에서 아이들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또는'모든 사람을 위하여---’등의 표현을 자주 듣는다. 그럴 때면 그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고쳐주곤 한다.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로 의아히 여기며 나를 쳐다보고 때론 되묻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이해받고, 인정 받아야만 가치있는 사람인 것으로 생각한다. 백일떡, 돐떡, 잔치떡, 이사떡 등이 그런 좋은예 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오래 된 옛 것'중에서 간직할만한 미풍양속들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태어나서 백일이 되고 돐이 되면 떡을 만들어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 돌리면서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고 덕담을 돌려 받는 잔치를 벌인다. 이런 잔치를 벌이는 부모의 마음속에는 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은 물론 주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이해․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고 본다.
이렇듯 본능처럼 자리한 부모들의 이 마음을 따라 자라는 아이들은 그대로 자신들의 마음자락에 이러한 욕망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 욕망이 그대로 본능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잣대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된다. 즉'가치 있는 사람'이란 무릇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이해․인정받아야 하는 것으로 당연하게 인정하고, 습관처럼 주위를 돌아보며 자신을 남과 같이 놓고 저울질하게 된다고 본다. 게다가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는 '누가 보면 어떻게 하나?' '남들이 뭐라 한다'는 등의 남을 의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그래서 남 눈치를 많이 보게끔 강요된 행동습관들의 형성에 전통적인 사고가 일조를 함으로써 더욱 부채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가정에서 자식을 훈육함에 있어서 무심하게 남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자녀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면 남의 눈을 의식하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너는 어떠하였니?' 라는 물음보다는 '네 짝은 어떠하더냐?'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의 부모들은 상대에 대한 탐색, 비판, 방어 등을 가르치는 것으로 가정교육의 주요임무로 삼는다. 이는 자녀를 바람직하게 성장시키려는 부모의 올바른 자세로 볼 수가 없다.
이렇듯 남을 의식하는 행동, 남의 기준과 잣대에 의해서 스스로를 통제하는 습성에 젖은 우리 자녀들은 자아성찰과 자아성장에 문제점이 많게 된다.
첫째, 자녀의 잠재력 개발의 기회를 잃게 된다.
자녀와 부모가 함께 자기 자신에게 깊게 그리고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자녀의 마음상태, 관심 있는 것, 사람을 보는 것, 판단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자신 있어 보이는 것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남과 다른 나만의 독특한 개성을 개발할 수 있다.
둘째, 자녀가 한결같이 정직하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부모가 남의 아이에게 늘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자녀는 믿는다. 따라서 자녀는 그 아이를 관찰하고 따라하기에 늘 마음이 바쁘다. 뿐만 아니라 자녀는 부모의 눈치를 늘 보게 되고 부모의 사랑․이해․인정을 얻으려고 자녀는 그들이 원하는 말만 하려고 한다. 잘 보이려고 쉽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셋째, 자신감 결여로 인한 피해의식을 키워 주기도 한다.
부모가 자신의 자녀보다 남의 자녀에게 관심을 먼저 보임으로써 자녀도 무심코 남을 기준으로 행동하게 된다. 남이 자신보다 잘 났다고 믿어버리기에 언제나 주눅들어 지내게 된다. 사람들의 얼굴 모양이 다 다른 것처럼 우리는 모두 다 다른데도 말이다.
넷째, 자신을 근사하게 포장을 하려고 애쓴다.
피상적이고 임기응변적인 대처를 가정에서 구체적으로 지시함으로써 대인관계에서 자신을 그럴듯한 상품으로 포장하려는 기교만 조장하게 된다. 따라서 어딘가 허풍이 느껴져 남에게 신뢰를 받기가 어렵다.
다섯째, 정체성 혼란이 온다.
여러 종류의 사람을 의식하고 행동함으로써 모방하고 눈치보는 ‘남’만 있다 보니 ‘내’가 없다. 대화라도 할라치면 앞에 있는 사람이 원하는 답을 생각하느라 자기 의견이 없다. 그러다 보니 말 잘 듣는 아이로 수동적인 사람이 되고, 나아가 잘 길들여진 아이로 커간다. 나중에는 창의력이 없는 아이가 되고 만다. 주위의 기대와 기준으로 형성되어 버린 '나' 에게는 나라는 본질이 타인의 시선이라는 껍질로 덮여버려 나의 본성, 나의 특질이 드러나지 않게 되고 자아의 상실,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여섯째, 자기 신뢰가 없다.
요새 성형수술이 성행하는 모습에서도 그런 것을 느낀다. ‘조금 예쁜 것’의 추구가 ‘이왕이면 확실하게 예쁜 것’으로 확 바뀌어 가면서 우리는 본래의 자신을 잘 가꾸는 것을 잊어버렸다. ‘잘 가꾼다’는 것은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의 힘을 키우는 것인데, 이것의 상실로 이어져 자신의 성장을 위해 인내하는 시간이나 상황을 충분히 견디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자신의 뿌리인 부모조차 부정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실체에 대한 확신이 없다.
일곱째, 자신의 감정을 늘 놓치고 살게 된다.
우리는 ‘주는 것 없이 좋은 사람’도 있고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도 있음을 안다. 즉 우리는 주위에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다 사랑․이해․인정하기가 어렵다. 우리가 상대를 사랑․이해․인정하는 이유가 ‘나랑 같으니까’, 또는 ‘나랑 다르니까’의 두 가지 중의 하나다. 그것도 ‘나랑 같아서 좋으니까’와 ‘나랑 같아서 싫으니까’ 또는 ‘나랑 달라서 좋으니까’와 ‘나랑 달라서 싫으니까’로 나뉜다. 이렇듯 자신의 감정이 상대에 따라 여러가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좋고, 모두에게 인정받는 행동만 하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니 자기 감정에 충실할 수 없고 나만의 심성을 갈고 닦을 여유가 없게 된다. 현재에 충실한 감정을 놓치고 살게 되면 우리는 과거의 좋았던 기억만 되돌아 보게 되고 아쉬움과 미련이 많은 부정적․소극적 생활 태도를 가지게 되기 쉽다.
우리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사랑․이해․인정을 받으려 애쓰는 대신에, 소수의 사랑․이해․인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다른 이들에 대한 그런 욕구들을 포기할 수 있다면) 그만큼 남 눈치를 덜 보게 될 것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나 자신의 감성에 충실할 수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삶의 여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여유로움으로 해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되고 나의 부족함을 짚어 보면서 나만의 특성․나만의 개성을 키울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남의 인식에서 벗어남으로 해서 편안한 자유로움의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자유스러운 나는 남 앞에 당당할 수 있고 그래서, 자신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제시하거나 자신의 부족함을 편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또 남에게 도움을 흔쾌히 주고받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 해서 제대로 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해의 첫 화두로, 『가치 있는 삶을 제대로 가꾸어 나갈 것』을 제안하고 싶다.
먼저, 우리 엄마들이 자기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자신이 속한 가정의 의미와 가치를 재 음미하고, 부모와 남편 그리고 자녀들, 주변의 좋은 친구들, 그들로부터 그들의 사랑․이해․인정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자. 나의 가치와 존재를 재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새로이 출발하자. 자녀들이 그들만의 자질, 특질, 특성을 잘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모역할에 충실하자.
그리하여 제대로의 「내 모습」을 찾고, 가식의 껍질을 벗고, 자아성장과 개성의 발현이 만발하는 충만한 삶을-가치 있는 삶을 가꾸어 나가자. <행가래로 1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