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지지와 도전적인 용기로 정면 돌파를
-비합리적인 신념10. 인생에서 어려움은 부딪히기 보다 피해 가는 것이 편하다.
2004년 1월 최영수 소장
나는 젊었을 때 거절을 잘 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나의 무능함을 말하기 싫어서 인 것처럼 보이나, 내면에는 거절을 듣게 되었을 때의 상대를 안쓰러워 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나는 나의 마음이 여리기 때문인 줄로 알고 자신을 상당히 인간적이라고 자부하며 지냈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선 대부분 그렇게 내가 하기 힘든 말을 삼킴으로써 나는 그 당장에는 친구와의 우정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에는 친구에게 ‘잘 안 된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어서 친구를 실망시킨 경우가 많았었다. 물론 나 역시 나의 어설픈 안깐힘에 허전해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나는 이럴 때 ‘인생에서 어려움은 부딪히기 보다 피해 가는 것이 편하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으로 나약한 생각에 매어 있었던 것 같다.
상담을 하던 어느 날 나는 ‘거절 못 하는 나’를 볼 수가 있었다. 거절 못하는 내 모습은 내 앞에 앉아 있는 내담자의 모습을 통해서 의식되는 내 기억 속에 있는 나의 어떤 모습이었던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도움을 애타게 원하며 누군가를 만나서 얘기를 하고 그 누군가로부터 ‘안 된다’는 얘기를 들으며 돌아서던 안쓰러운 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 ‘기억 속의 나’가 어려운 친구의 얼굴 앞에 나도 모르게 클로즈업되면서 나로 하여금 안쓰러운 친구의 모습으로 느끼면서 동시에 거절의 말을 못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어려운 상황에 처한 내가 안쓰러워 보이기에 그런 나에게 내가 거절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못 받아 애 태우던 내 모습을 어려운 말을 하러 온 상대에게서 보고 있는 것을 그제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기억 속의 안쓰러운 나를 지금의 편안한 나로 바꾸어 놓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서 편안하게 나의 입장을 전하고 때로는 거절의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들의 일상 중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리라고 믿는다. 다만 우리들이 깨닫지를 못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인생에서 어려움은 부딪히기 보다 피해 가는 것이 편하다’고 믿는다면,
1. 늘 어려움의 그림자 속에서 지낼 것이다.
내가 재수할 때의 일이다. 학원 수위 아저씨 아들이 좋은 고교에 입학을 했는데 등록금이 없다고 걱정이셨다. 가불은 안 되고. 나는 처음에는 하필 내가 이런 걱정거리를 듣게 되었는지 나 자신이 답답했다. 나의 경제 문제도 신통찮은데----그래도 용기를 내었다. 학원의 각 반을 돌면서 일인당 20원씩을 걷자고. 그러면 7000여원은 족히 걷힐 것 같았다. 함께 할 친구의 도움을 원했으나 ‘단지 부끄럽다’는 이유로 못 도와준다는 거였다. 나는 그때까지 많은 남학생들 앞에서 얘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다행히 예상보다 많이 걷혀서 충분한 돈을 그 분께 건네 드릴 수 있었다. 이 때 내가 용기를 못 내었다면 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는커녕 그 그림자 속에서 끙끙거렸을 것이다. 그 때의 내 마음의 후련함과 주위로부터 느껴지는 행복함은 지금까지 나를 세상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했다. 아마 지금의 내 모습도 그런 힘이 바탕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믿는다.
2. 늘 겁먹은 마음으로 외롭게 지낼 것이다.
어느 돈 많은 사람이 ‘어쩌다 버스를 타면 내 주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모두 도둑으로 보이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당시에 그 사람은 정신건강에도 안 좋으니 필히 자가용을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돈이 많은 것도 좋기만 한 일이 아니고 늘 목숨을 담보 삼아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애처롭기까지 생각이 되었다.(사실 그 시절에는 자가용 있는 사람도 얼마 안 되었으니 그럴만 했다.) 내 곁에 오는 사람마다 다 내 돈을 보고 온다고 극단적으로 생각한다면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피하고 싶은 일이었을까 생각되어진다. 그러니 자연히 외로움을 차라리 편해했을 것 같다. 그러나 있는 돈을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돈이 있는 자가 주눅들어 지내는 모습도 코메디같이 보인다. 차라리 세콤장치를 믿고 때로는 과감하게 부딪쳐서 사람들을 만나고 가끔은 어려운 사람도 도와준다면 의외로 그 부자는 스스로 주위에 대한 신뢰를 키워가면서 더욱 평안한 시간들로 채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3. 늘 방어하느라 경직되어 긴장된 모습만 보여줄 것이다.
입학 시험을 보거나, 면접을 하거나, 무대에 설 일이 있거나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수를 안 하겠다는 일념으로 지나치게 긴장하여 시험을 못 보거나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래서 나온 말이 ‘연습은 실제처럼, 실제는 연습처럼’이다. 축구시합의 경우에서도 최고의 전술로 적극적인 공격을 들기도 한다. 즉 적극적인 공격이야말로 최고의 방어인 것이다. 늘 실수를 안 하겠다고 피하는 일만을 능사로 여기다 보면 위와 같이 좋은 기회를 실기할 수도 있고, 또한 연습과 실제를 구분하여 익히느라 신경을 곤두새우고 지내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다양해서 때로는 선제 공격으로 적극적일 필요도 있다.
시어머니의 노년에서 죽음과의 싸움을 보면서 나는 많이 안쓰러웠고 답답했다. 정말 마지막까지 당당하고 의연한 당신의 모습을 뵙고 싶었다. 그래야 나도 보고 잘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 개인적인 생각은 우리 모두 잘 사는 법도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만 우리 모두는 잘 죽는 법을 더욱 충분히 익혀야 한다고 믿는다.
삼생(전생, 이생, 후생)을 보신다는 어느 스님께서 중생들의 얼굴을 보고 어려움이 있을 것 같으면 그 어려움을 피해 가는 방법들을 일러주곤 했는데 지나 놓고 보니 결국엔 그 중생들이 업으로서 감당해야 할 일들로 다시 그 어려움이 그 중생들에게 찾아오는 바람에 겪어낼 수밖에 없었다는 자조섞인 말씀이 생각난다. 결국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저마다 그 시기가 내게 있어 가장 적절한 시기임을 믿고 최선을 다해 겪어내야겠다. 그래서 주변의 지지를 평소에 많이 적금을 들어야 하겠고, 그 적금을 담보로 도전적인 용기를 스스로 일구어 내야 하겠다. 그래서 자신의 나이와 함께 하는 행복을 엮자. <행가래로 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