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있는 기회의 에너지 '꾀'
2004년 10월 최영수 소장
「꾀」란 국어사전에 ‘일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교묘한 생각이나 수단’이라고 씌어 있다.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머리를 쓰며 살아야 했던 시집살이가 얼른 떠오른다.
30년 가까이 살던 친정살이에서 알게 모르게 내 몸에 익혀 있던 생활 습관에서부터 모든 것들이 다 다른 환경을 결혼과 함께 맞닥들이게 되었다. 부엌으로 설명하자면 입식에서 좌식으로 시집을 간 것이다. 소파에 앉던 버릇 때문에 바닥에 앉을 때마다 꽈당(?)하듯이 앉게 되어 늘 손을 먼저 궁둥이에 대면서 앉곤 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부엌에서 처음 들은 생소한 말, ‘쪽대 가 온나’에 얼른 국자를 드렸는데---또 ‘지렁(간장의 경상도 사투리) 가 온나’에는 별 수 없이 여쭐 수밖에 없었다. 국자에서는 꾀로 인정을 받으면서 지렁에서는 솔직함으로 사랑받은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우리 나이의 대부분의 여자들의 삶은 대개 가정에서 이루어지기에 시댁과의 문제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시댁일로 남편과 시어른들과 문제가 생길 때마다 꾀를 부려서 잘 넘어갈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은 여자들이 행복하고 덩달아 남편들도 어깨춤이 절로 날거라고 본다.
나는 음식문화가 다른 것에도 한참을 힘들어했다. 살기 위해서 무조건 먹어야 했지만, 어머님의 습관처럼 물을 아끼느라 덜 씻은 채소를 먹을 때는 구충약을 한 번 더 먹을 뱃장을 꾀 삼아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생활에서 오는 불편함은 홀시어머님의 ‘말없으심’이었다. 그러면서 마냥 일거리만 계속 끄집어 내 놓으시는 것에도 너무 헉헉대었다. 그래서 나는 ‘힘들다’고 말하는 용기를 내며 응석부리는 꾀를 내었고, ‘말없으심’에는 3일에 한 번씩 사고를 치는 뱃장있는 꾀를 부렸다. 그렇게 해서 어머님의 속내를 나에 대한 야단침으로 풀어가게 꾀를 내었다. 3일에 한 번씩 꾸중을 하시는 우리 어머님은 마음이 많이 편하셨을 거라고 믿는다. 덕분에 나는 내가 만든 함정이기에 화안내고 꾸지람을 듣는 아주 착한 며느리노릇을 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딸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는데도 톡톡히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꾀부림으로 시작된 생소한 시집살이를 익혀갔으며, 그 덕에 나는 시어머니의 인정과 사랑으로 시댁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영원한 새댁의 위치를 다졌고, 나대로 봉사하는 또 다른 삶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의 꾀는 여우처럼 상큼하고 예뻐 보인다. 이 여우같은 꾀꾼들이 주위의 인정을 받고 사랑도 듬뿍 받아서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젊음의 활기를 뿜어내면서 기로에 설 때마다 세상을, 인생을 끌고 가는 견인차 노릇을 충분히 하리라고 믿는다. 이러한 젊은 꾀도 나이 들면서 나이 값을 해야 하리라. 나이 든 어른들이나 노인들은 곰처럼 영리한 「지혜」로 자리매김 하면서 세상을 버텨주고 인생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렇듯 꾀는 순간적인 뱃장이 요구되고 그 뱃장이 용기로, 기지로 자리바꿈하면서 분위기가 역전되고 새로운 기회를, 분위기를 창출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기회의 반전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상황의 윤택함과 흥분이 우리의 삶을 엑스타시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자칫 메마르고 삭막해지기 쉬운 고달픈 이 세상살이에서, 우리 모두 열심히 살아야 하고, 여기에는 굳센 의지와 인내가 그 바탕이지만, 거기에는 「유머」라는 여유가 양념처럼 필요하고 「꾀」라는 깨소금이 꼭 필요한 필수 영양제라 하겠다. <행가래로 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