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릇' 진열장 - 40호

작성자행가래로|작성시간12.02.16|조회수132 목록 댓글 0

세상은 ‘그릇’ 진열장

 

 

2005년 5월 최영수 소장

 

 

  오늘도 나는 그릇을 깬다. ‘상대’라는 그릇은 물론 ‘내’그릇도 깬다.

 

  내 뜻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릇 깨지는 소리’부터 내지른다. 물론 처음에는 조용히 말을 전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나 인양 나만한 모양으로 같은 크기인 그릇으로 여기고, 무조건 내 그릇에 있는 내 뜻과 같은 것이 거기에도 의당 있을 줄 알고 그대로 퍼 부으려고 한다. 물론 고분고분 잘 담겨지지 않는다. 그럴 땐 냅다 소리를 버럭 지르는 내 모습을 본다. 그렇게 나는 상대의 그릇을 깨곤 한다. 내 그릇도 깨짐은 피차일반이지만 흥분하고 있어서 전혀 개의치 않아 나조차 모른 채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가정폭력 행위자이다. 나이가 먹으면서 다행인 것은 그나마 그 그릇이 깨지는 소리를 들을 줄 안다는 것이다. 때로는 얼굴의 일그러짐으로 또는 마음의 일그러짐으로 그렇게 소리 없이 깨지면서 긁힌 상처가 소리를 내며 깨지는 것에 비할 바 없이 크고 깊게 곪아 있어 마치 암 덩어리처럼 내밀한 속 깊이 묻혀 있었다가 가끔씩 폭발적 에너지로 나타남을 스스로의 경험으로 감지하기는 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가정폭력 행위자’들을 만나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한다. 그들의 평소 모습은 너무도 우리와 똑같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그릇을 깨게 되는 기회와 분위기가 주어지기만 하면 똑같은 방식으로 순식간에 해치우는 것이 우리보다 더 고속인 만큼 능숙할 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다른 점은 그들은 자신의 그릇이 깨지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을뿐더러 상대의 그릇이 깨진 상황에서 조차도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 않는다는 것이다. 설령 상대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당위성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정폭력행위자들 대부분은 ‘너만 가만있었더라면……, 네가 부추기지만 안했더라도……’라는 말로 겨우 자신의 흥분을 가라앉힐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반듯한 사람으로 크는 것이 많이 장려되고 강요하는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내가 옳다’는 것을 쉽게 양보하는 상황을 기대할 수는 없다. 다 자기 식으로 개성 있게 자신을 키워가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하여 지금 마주한 상대가 나와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지 못함에 오히려 당황하여 실망감과 배신감으로 분노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가정폭력을 휘두르게 된다고 본다.

 

  ‘입안에 혀도 물린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보통의 경우 자신에게 있는 것을 너무도 당연히 자기 것이라고 여긴 채 어떤 상황에 대한 점검도 없이 마음대로 사용하는 탓으로 여겨진다. 내 것이라 하더라도 사전준비 없이 사용을 하다가는 이렇게 혼이 난다는 의미로 본다면, 배우자 역시 그렇게 ‘입안의 혀’처럼 기대는 물론 나만의 기대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집온 세월이 시어머님만큼 되면 시어머님만큼 할 수 있다’라는 가정을 한다면, 그 세월을 우리는 열심히 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상대의 생활을 편하게 배려를 하는 등 상당한 투자를 해야만 한다. 그런 투자는커녕 우리 대부분은 이름 새기기에만 급급하다. 또한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우리는 자기 그릇에 이름만 새겨 놓고 그냥 자신을 전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음을 본다. 물론 세상은 여러 모양의 ‘그릇’들로 이루어진 전시장이라 하겠지만, 그릇 파는 사람들이 그릇을 열심히 닦고 조심스럽게 다루듯이, 그들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먼저 소중하게 대접하는 의미로 열심히 닦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대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그릇에 맞는 자리에 자신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행가래로 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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