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 나름대로 박사’다
2005년 7월 최영수 소장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하는 일을 보면, 세수하고 화장실 가고 아침상을 준비하고 언제나처럼 매일 하는 똑같은 일을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반복을 한다. 다만 어떤 날은 좀 가볍게 시작하고 또 어떤 날은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는 등 내 마음에 따라, 또는 몸의 건강상태에 따라 즐거운 정도의 차이가 나고 시간상의 차이가 있을 뿐 그 아침에 해야 하는 일들은 반드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문득 ‘지금 이 순간’에 딴죽을 걸고 있으면 지금 바로 안 해도 되는데 내 성질에 못 이겨서 또는 습관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손을 못 놓고 붙들고 있는 나를 본다. 한편, 적당히 해도 될 일을 완벽함이나 결벽증을 내세워 강박증 환자처럼 일을 몰아가면서 가족들까지 볶아대는 나도 본다. 그리고 천천히 틈을 보아 가며 슬쩍 잘 해 놓고 ‘깜짝 쇼’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도 있는 일들도 많이 움켜쥐고 있는 내 손을 물끄러미 보고 있기도 한다.
나만이 해야 하는 나의 아침 일과가 이럴진대, 임금을 받으며 수행되는 더 많은 일들이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의 손에 만져지면서 나처럼 여러 경우를 답습하다가 많은 군더더기들이 붙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들은 제 각각 보는 시야가 다르고, 경험의 세계가 다르며, 현재 관심 있는 분야가 다른데……. 많은 다양한 견해들이 순열 조합을 이루며 각자 나름의 최선의 답을 내 놓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게다가 힘이 센 사람, 목소리가 큰 사람 등의 파워게임에 들어가면 눈치 보는 만큼의 군더더기들이 늘어나서 그 일들이 의도하는 애초의 뜻조차 뒤집어 놓을 확률이 상당하다. 나아가 더 많은 군더더기를 소화하느라 비대해진 몸으로 그 일을 해내기 위해 더 큰 기구를 만드느라 법석 떠는 모습도 심심찮게 본다. 그럴 때는 일이 먼저인지 기구가 먼저인지 헷갈리기도 하는 것 같다.
도로표지판을 따라 가다가 낭패를 겪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설치하는 사람들이 자기 마을에 관한한 박사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 집 아침 일에 박사이듯이……. 그래서 군더더기임을 딴죽을 걸어도 ‘박사’를 밀어낼 만큼 충분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 모두는 일상에서 ‘박사’들인 셈이다. 그래서 ‘박사’라는 군더더기를 달고 다니고 ‘박사’니까 남의 말도 잘 들을 수가 없고 애꿎은 일만 이 사람 저사람 손으로 다니면서 손만 타는 게 아닌가 싶다.
반쪽이네 아빠가 육아와 집안 살림을 하면서 여기 저기 손때가 야무짐을 보면서 나는 내가 사는 이 일상을 그처럼 하지 못한 내 모습에 답답하다. 살림하랴 일하랴 바쁘다면서 살림을 단순화하지도 못하는 나, 시간이 없어 문제가 된 살림거리들을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보다 더 편리하게 하지도 못하는 나. 자신의 몸에 밴 구차한 습관들, 이미 이력이 나서 되돌아 씹어 볼 여유도 없는 나의 일상적인 모양에 푸념을 해 본다.
군더더기가 많은 나의 일상. 군더더기로 자꾸만 비대해져가는 사회의 여러 기구들, 그리고 커지면 일보다는 힘으로 승부를 하려는 단체들이 매너리즘에 빠져, 자기 최면에 빠져 ‘지금 이 순간’을 느끼지 못함을 보면서 ‘박사’의 하향평준화를 본다. 고속정보화 시대에 사는 우리는 반쪽이 아빠처럼 ‘지금 내가 서 있는 그 곳’에 충실함으로서 ‘나름대로의 박사’를 고품질화하자. <행가래로 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