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행복」
2005년 10월 최영수 소장
그동안 나는 자주 미소 띤 얼굴을 지으려 노력을 하였다. 오가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부드러운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러다 어느 날에는‘괜찮은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고 또, 그런 날이 오리라는 희망으로 내가 나 자신에게 ‘더욱 더 많이’라는 염원을 담아 고봉밥을 퍼서 먹이며 나를 띄우곤 하였다. 이러한 고봉밥을 먹은 기대감으로 자신을 제법‘괜찮은 사람’으로 여김과 동시에‘괜찮은 사람 노릇’을 익히게 되면서 스스로도 그러한 연출을 즐겨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꽤 괜찮은 사람이 될 것 같아 흐뭇한 미소가 내 얼굴에 더 자주 머물 것이라고 믿곤 하였다.
내가 만나는 그래서 특별한 정이나 애정을 느끼는 다른 이에게도 고봉밥을 퍼 담고 있는 나를 최근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가족과 친인척관계에서 더욱 심함을 알 수 있었다. 평소에는 나름대로 그들 그릇의 크기나 모양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를 함과 동시에 상대의 그릇에 맞게 잘 대해 주고 있다고 나 자신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상대의 그릇에 걸 맞는 대접을 받음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한 실망스러움이 도를 넘쳐 엄청난 분노로 가슴에 응어리로 자리 잡고 종국에는 가라앉히지 못한 성냄이 용서 안 되는 미움으로 조그마한 자극에도 쉽게 불타올라 심기 불편함을 드러내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오로지 상대를 향해서만 온갖 비난을 퍼부으며 삿대질과 주먹질을 해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상대를 생각하기만 해도 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짐과 동시에 일그러지는 못난 얼굴이 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경과해서야 내 그릇을 볼품없게 만드는 일을 저지르는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나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내 그릇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그 때부터 나는 내게서 흘러내린 고봉밥을 주어 담기 시작했다.‘괜찮은 나’로 다시 태어나고픈 마음에서였다. 고봉밥그릇에서 떨어진 밥알을 챙겨 주워 먹던 나는 순간 ‘아……’ 그들에게도 내가 고봉밥을 퍼 주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들은 아무 죄도 없었다. 그들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그렇게 퍼서 안긴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퍼 준 고봉밥에 대고 삿대질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그릇으로 보아서는 당연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왜 내가 그렇게 실망스럽고 황당해 하는지 조차 이해하기 어려운데……어쩌면 그들에게는 내가 퍼 준 고봉밥 자체가 더 당혹스럽고 불편해 할 일일텐데…….
내가 자신에게 퍼 먹인 고봉밥 때문에 그에 상응한 대접이 아니라고 분노만 할 줄 알았던 나는 그 동안 그 고봉밥에 가려진 나의 그릇을 다시 볼 수 있는 행운을 이제라도 누리게 되었다. 한 때 사회일각에서 일었던‘내 탓이오’캠페인 구절이 떠오르면서, 고봉밥으로 눈을 채우기보다는「있는 그대로」를 두어두는 마음의 행복 찾기’로 이 가을에 내 마음을 채워야겠다. <행가래로 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