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누는 삶’은 적절한 거리 유지에서
- 비합리적 신념 2. 우리는 타인의 문제나 혼란스러움에 함께 괴로워하고 속상해야 한다. -
2003년 3월 소장 최영수
나는 앞에 마주한 사람과 마음이 같아야만 그와 편안하게 마주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문제나 혼란스러움에 함께 괴로워하고 속상해야만 한다고, 온전히 함께 해야한다고 신념처럼 믿으며 실천하려 애쓰고 살았다. 그래서 마주한 그 사람과 무언가 미진한 채로 헤어지면 내내 마음이 불편하였다. 왜? 마주한 사람의 문제나 혼란스러움에 함께 괴로워하고 속상해야만 그 사람의 진정한 친구라고 믿었으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먼저 진정한 친구가 된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나는 미해결의 문제들을 늘 마음에 끌어안고 살면서 어느 곳에도 충실할 수가 없었다. 이런 마음가짐은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이며 나의 능력에도 물론 한계가 있고, 내가 알고 느끼고 있는 것에도 내 식대로의 선택이기에 문제에 대한 해석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해결방법 또한 상대에게 불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이라는 단어에 매달려서 끙끙거린 세월이 너무나 많았다.
이렇듯 타인의 문제나 혼란스러움에 함께 괴로워하고 속상해야만 한다면,
첫째, 자칫하면 물귀신처럼 같이 허우적거리기 쉽다.
가족이나 친구, 친척, 이웃들의 문제나 혼란스러움에 함께 괴로워하고 속상해야 한다고 해서 함께 끙끙거리다 보면 같이 헤매게 되면서 오히려 서로가 문제해결은커녕 같은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일어나기가 쉽다. 실제로 우리는 문제가 생겼을 때 대개의 경우, 답을 모르기보다는 해결 방법이나 일의 순서를 모를 때가 더 많아서 헤매기 일쑤다. 그리고 지나고 보면 내 문제에 있어 나 이상의 답을 가진 자가 없었음을 종종 깨닫는다.
둘째,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이 되어 일방통행으로만 길이 든다.
시댁과의 관계에서 나는 근 30년을 내 것 네 것 없이 살았고 시댁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함께 괴로워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온 마음을 다해서 무조건이고 무제한으로 문제해결에 열심히 매달렸었다. 왜? 나는 언제나 이웃사촌보다 나은 형제간이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왔으니까. 그러다 보니 나나 남편은 보통의 능력을 가진 자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무엇이든 주는 역할을 하면서도 말 한마디 않으면서 해야했고 상대는 언제나 받는 자의 역할을 하면서도 하고픈 말을 하는 위치로 길이 나고 말았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릇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늙어 가면서 한계는 우리에게도 있게 마련인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길들여진 대로 일방통행의 길을 연장하고자 우리의 한계신장에 습관처럼 전력을 쏟는다.
셋째, 마지막 한계에서의 소홀함으로 엄청난 원망과 마주 하게 된다.
당면한 문제나 혼란스러움에 함께 괴로워하고 속상해야만 한다고 믿었던 나는 종종 마지막 한 고비를 못 넘기고 버거워 하다가 결국엔 내색을 하고만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왜 갑자기 그러는지 당황해하다가 점차 원망과 함께 불편한 마음을 옹그리게 됨을 보곤 했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좋은 마음으로 대하던 시간들은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없다. 나나 마주한 그나 다 서로에게 원수 같은 기분에 찌들어 불편할 뿐이다.
내가 가족이나 친구, 친척, 이웃의 문제나 혼란스러움에 함께 괴로워하고 속상해야만 한다고, 온전히 함께 해야한다고 믿으며 실천하려 애쓰며 살다 보니 무소부지의 신이 아닌 나는 결국 주제넘은 사람으로 오도 가도 못한 채 무거운 마음의 짐에 짓눌려 있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오는 날을 시작으로 오랜 동안 정을 나누던 정다운 이웃들에게 이별을 선언하였다. 물론, 근사한 핑계인 ‘건강할 때 헤어지자’는 내 생각을 그들로부터 선선히 수용 받지는 못했으나 나는 지금도 홀로서기 면으로는 잘 했다고 생각한다. 왜? 나는 평소에 그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도움을 상당히 받으며 평안하게 지냈다. 또한 그들은 내가 아프면 제일 먼저 달려와서 나를 도와 줄 그런 좋은 친구들이었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들 중의 한 가정에 어려움이 닥치면서 그들과 함께 괴로워하고 속상해 하는데 내 능력의 한계가 있음을 절절히 알게 되었고 반면, 그들이 없이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보았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과 온전히 함께 해야 한다는 나의 비합리적인 신념대로 처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보답 할 길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막막하고 두려워진 마음이,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의지하는 것이 많아진 마음이,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나 혼자 걸음마를 시작하고 싶은 성급한 마음이 나로 하여금 그들에게 이별선언이자 독립선언을 하게 했다. 마찬가지로 시댁과의 관계에서도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정신 차려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내가 조카들에게 손을 벌릴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내 자식에게도 부담스런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내 노년을 앞에 두고 볼 때 누구도 나를 나 이외에 책임지게 해서도 안되고 책임을 지울 수도 없음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시댁 식구들과 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나의 경우, ‘별로 없는 자’의 사치일 수도 있고 ‘있어 보이는 자’의 주제넘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려울 때는 조금 더 있어 보이는 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그러나 습관이 형성되면 일방통행이 되어 버리고 으레 그렇게 관성의 법칙대로 굴러간다. 그러다 보면 좋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쪽은 버거운 마음에 원망이 생기게 되고 다른 한쪽은 자신의 능력을 까먹는 줄 모른 채 의존적인 삶을 살게 됨을 보았다.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신 연후에 는 시댁과의 관계에서 독립하고자 했다. 비로소 ‘서울 깍쟁이’가 되어 보려 노력 중인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10번을 잘 하다가 마지막 1번을 잘 못해서 좋은 만남을 이어오던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한편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온갖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붓곤 한다. 그만큼 가족이나 친구, 친척, 이웃들의 문제나 혼란스러움에 함께 괴로워하고 속상해 하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서 끝까지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편, 주위의 문제나 혼란스러움에 함께 괴로워하고 속상해야만 한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으로 일관되게 행하다 보면 고정된 내 모습 때문에 마주한 사람과의 순환고리가 형성되고 나중에는 악순환으로 결국에는 자신의 한계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하려다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주게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나는 ‘함께 한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만큼은 해 놓고 주위에 ‘조금 더’를 부탁하거나 요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곧잘 타인을 돕는다고 하면서 그 타인의 의타심만 조장하고 홀로서기를 방해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받는 자의 입장에서는 선의라고 모두 다 받아들여도 안되고 주는 자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원망을 감수할 용기를 때로는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습관적으로 또는 선의로 표현하는 마음이나 행동들에 냉정한 이성으로 한번씩 점검해 보아야겠다. <행가래로 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