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란 밥상에서의 순수
2006년 2월 최영수 소장
얼마 전에 나는 참으로 순수함에 대한 순수 그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세상현실로 인해 오랜만에 분노로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 할 만큼 엄청난 고통과 장시간 직면 한 적이 있다. 그런 직면을 통해 그 모두가 ‘내 책임’이라고 통감을 하고 나니 비로소 나를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순수함’의 고집은 세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또 하나, 자신의 순수함을 보여줄 수도, 설명될 수도 없음도. 참담했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아는 만큼, 보는 만큼만 알고 본다는 속성을 다시 한 번 체험하였다. 나 역시도 예외가 아닌데. 순수를 지켜야한다면 어떤 의도가 있는 이의 억지를 능가해야 하는데, 그 능가의 과정 중에 순수 역시 순수라는 의도가 있는 또 다른 억지가 있게 된다. 결국, 순수를 주장하려던 자는 순수 자체를 위해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학창시절, 경제시간에 배운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라는 문구가 순간 떠오르면서 악화가 득세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확 깨우쳤다.
내가 말하는 ‘순수’는 ‘사사로운 마음이 없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런 순수가 정말 온전한 정신이 있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정녕 가당키나 하겠는가? ‘세상’이란 밥상에 온갖 것이 차려져 있는데 그 누군들 정말로 먹지 않은 채 살아갈 수는 분명 없을 테니…. 그러나 순수도 이를 주장하는 어떤 사람의 한쪽 의견일 수밖에 없다.
「순리대로 가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강조하는 그들에게서 얻은 것은, 보다 많은 이들의 「좋은 뜻」을 모아가기보다는 보다 많은 이들의 눈치를 보아 그들의 이기심에 영합할 때만이 비로소 세상이, 내 주위가 내게 공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순수는 사심을 비켜간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순수는 사심과 언젠가는 맞부딪칠 텐데…세상의 많은 순리추종자들은 따지고 보면 사심에게 많은 권력과 에너지란 먹이를 주고 있는 셈인 것을 알고는 있는지…
일생을 어떤 원칙을 세우고 거기에 맞는 삶을 추구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다양한 종교를 믿고 의지하는 신도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그들이 믿는 종교의 교리나 계율을 따라 매일 매일의 삶을 살기도 하지만, 하루를 마감할 때면 반성과 뉘우침의 시간을 개인적으로 갖기도 하리라. 물론 종교인 앞에 가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죄의 사함을 받고자 간절한 기도와 참회로 읍소도 하리라. 혹 종교가 없는 이들 중 극히 일부는 예외적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불행이 닥치면 그 불행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반성의 시간들을 가지기도 하리라.
인간이 이렇게 미약함을 뒤로한 채, 많은 사심들의 다수결로 우리 사회를 끌고 가는 오늘의 현상들 앞에서, 많은 순수를 표방하는 이들이 오그라들 수밖에 없는 이 현실에서 우리는 대부분 자신들의 자녀에게 오늘도 변함없이 순수를 가르친다. 이제라도 ‘눈치 없는 순수’끼리 다수집단을 형성하여 그 속에서 마주치는 사심들을 토론하며 보다 더 성숙된 자세를 익혀 순수들 스스로 세상에 순수의 실사구시를 접목하는데 일조하기를 원한다. 순수들이여 힘을 모으자! 그래서 Naked Mind 연대를 해보자. <행가래로 4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