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물교환의 호연지기
2006년 3월 최영수 소장
우리 인간들이 느끼는 부정적 감정은 불안, 분노, 죄책감, 우울증이다. 불안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느끼는 감정이고 분노는 현재에 내 뜻대로 하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화이다. 죄책감은 과거에 그랬어야만 했었는데 현재 그렇게 하지 못한 후회의 감정이고 우울증은 위의 3가지 감정이 다 합해져서 살아야할 의미도 의욕도 없는 아주 무기력한 그래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최악의 감정 상태이다. 이러한 감정들을 느낄 때 우리의 몸은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러한 신호들을 무시한 채 우리는 우리의 몸을 마구 휘두르며 마음대로 써 버리는 것이 마치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몸을 물물교환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불안이 심해지면 정신병원에 입원해야하고 분노가 과도하게 표현되면 폭력행위나 살인으로 감옥에 가야한다. 죄책감이나 우울증이 과도하면 그 감정에 갇혀서 자신을 자학하며 오랫동안 그 감정이란 감옥에 갇혀있는 것이 마치 감정과 몸을 맞바꾼 물물교환으로 대가를 치르는 우리네 모습들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은 결코 녹녹하지 않다고들 한다. 나는 다행히 나를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50여년이 되도록 그들 곁에서 지낼 수 있었다. 절이 싫으면 떠나는 중처럼 세상의 불편함과 힘듬을 내 쪽에서 얼마든지 외면을 할 수 있었기에 그 때도 지금도 그들과 함께 하는 세상에서 여전히 행복하다. 그 속에서는 진정한 사랑을 주고받고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캇펙의 말대로 진정한 사랑은 의지적인 것으로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키려는 의지’라고 나도 동감한다. 진정한 사랑을 나누면 안 보아도 그를 떠 올리고 느끼면서 행복해지고, 그러다 만나면 서로에게 더 많은 행복을 주울 기회를 포착하고 그만큼 성장해지기에 나는 행복이란 성안에서 감히 행복을 씹으며 사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사랑을 내게 무심한 사람들과도 의도적으로 나누고 싶다. 봉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복해야만 한다고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봉사는 배려에서 출발한다고 생각되고 나를 포함한 타인들에 대한 배려와 ‘나’를 물물교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정에서도 남편과 자녀를 위해 배려라는 봉사를 통해 나의 행복지수를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문제는 우리들이 진정한 사랑을 하려는 의지가 없거나 약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는다. 사실 우리는 가정에서 맘껏 편해지려 한다. 그러나 오늘날 가정도 경영이다. 감정대로 내 임의대로 하기엔 가정 구성원들도 다양성을 추구하고 그에 따라 사회구조도 복잡함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나는 그들이 자신의 마음과 몸으로 물물교환을 유연하게 아주 잘 한 덕분으로 여겨진다. 타인을 배려하는 그럼으로써 나누어지는 사랑으로 자신의 마음과 물물교환을 제대로 한 덕으로 그런 아름다움을 얻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양적」 충족을 추구하여 행복에 자만하는 사람들을 마구 양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2만불시대 진입으로 선진국진입이 머잖은 마당에 우리는 마음의 「질적」 추구를 함으로써 훌륭한 그래서 행복한 사람들을 키우는데 더 많은 교육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시작은 ‘나부터’에서 함으로써 겉보다 속을 채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지향해야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몸을 물물교환 하는 순간에 비록 몸이 조금 고달프더라도 우리는 엄청난 호연지기를 맛 볼 수 있으리라. 그래서 나만의 행복감을 넘어 보다 더 많은 훌륭한 인재들의 출현에 대한 희망을 키워가자. <행가래로 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