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샘을 채우는 행복한 부자 - 56호

작성자행가래로|작성시간12.02.27|조회수13 목록 댓글 0

마르지 않는 샘을 채우는 행복한 부자

 

 

 

 

2006년 12월 최영수 소장

 

 

  6․25전쟁을 겪으면서 9․28서울 수복 전날, 나는 나의 죽음에 직면하였다. 그 당시의 나는 엄마 치마폭을 잡은 채 걸어 다니던 아주 어린 꼬맹이였다. 그 어린 꼬맹이가 그날은 엄마 치마폭을 잡지도 못하고, 혼자서 나를 바라보는 따발총구 바로 앞에, 감히 엄마도 쳐다보지 못한 채, 똑바로 혼자 서서 버텨야만 했다. 내 옆에는 강보에 싸인 동생이 찬 시멘트 바닥에 놓인 채 악을 쓰며 울어대고 있었다. 따발총을 다 장전하여 우리에게 총을 발사하려는 순간, B-29기가 갑자기 하늘에 나타났고, 그들이 전투개시로 급하게 호출되는 바람에 우리 부녀자들은 모두 구사일생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어린 꼬맹이 시절의 아주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나의 세포들이 숨쉬기조차 어려웠던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었음을 훗날 알 수 있었다. 그 때의 그 숨 막히던 순간이, 학교체육시간의 점호시간마다 떠올라 호흡곤란을 느끼며 여러 번 쓰러질 번하였으나, 그 때에도 난 그대로 버텨내려고 애쓰는 나로 재현되곤 하였다. 아마도 그렇게 버티기만 하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 그날의 상황에서 얻은, 그때를 기억하고 있는 나의 뇌세포들의 부추김이라고 믿어진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늘 건재할 수 있었나 보다.

 

  2007년이 시작되는 날 한 밤 중인 12:30분에 나는 처음으로 그 시간의 서울 한 복판이 궁금해지면서 나가고 싶은 충동을 생전 처음 느꼈다. 남편에게 드라이브를 가자며 내 쪽에서 데이트 신청도 할 만큼 2007년 새해 첫날을 그렇게 설레임으로 서성거리며 맞이하는 새로운 나를 느끼기도 하였다. 새해는 우리 인간들이 그어 놓은 무수히 많은 날들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서는 어떤 새로운 욕구가 생기며 역동적인 나를 느끼게 되고 이를 축하하면서 지내는 마음을 스스로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흘러온 세월 속에 나의 핵심자아와 마주서는 행운을 거머쥐게 되니 감회도 새롭고 또 한 차례 맞는 축복의 비 가운데 정녕 행복해지고 싶어라.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몇 번의 선택의 기회를 거치면서 오늘의 내 모습이 되었고, 또한 그 와중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도, 그와 맞먹는 고통도 겪어 내면서 오늘의 내가 형성되었으리라는 감회에도 잠긴다.

 

  어려서부터 나는 아버지로부터 ‘너는 가진 것이 많은 아이니, 언제나 네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거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이 말씀에 대해 늘 생각하고 매달렸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이고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그런 생각들이 내게는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 무엇을 찾기 위해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고, 줄 것을 찾아 내게서 마르지 않는 ‘샘’을 찾을 수 있었다. 행복하게도 오래 전에 찾을 수 있었다. 「내 머리 속에 든 것」과 「내 마음」이 바로 그 샘이었다. 아무리 퍼내도 계속 차는 것을 실감할 수도 있었다. 마치 ‘버리는 자가 곧 얻으리라’는 말씀처럼….

 

  이렇게 겪었던 진한 나의 경험들이 지금의 내가 됨의 밑바탕이었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가족과 주위의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내가 지금의 나일 수 있기에. 새해에는 그들과 함께 다시 얻은 역동성으로 행복한 죽음까지 가는 노년의 성장을 꿈꾼다. 특히, 올해는 마르지 않는 나의‘샘’이 여전하도록 가꾸고 더 많이 나를 사랑하고자 스스로 다짐을 한다. 자기사랑으로 자신의 샘을 채우는, 그래서 행복한 부자가 되기를! <행가래로 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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