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월에서 낚은 희열
2007년 4월 최영수 소장
내게는 바다를 닮은 눈빛을 한 이웃이 있다. 그녀의 눈은 어떤 물체든, 어떤 상황이던 그 속에 담아진 그 순간, ‘있는 그대로’를 흐드러지게 담아내는 바람에 모두들 그 눈에 풍덩 빠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구든 그녀와 마주하면 나처럼 그녀 눈 따라 함께 출렁인다고 곧잘 믿는다.
그녀는 부럽게도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지켜봐 주고 기다려주고 함께 해주는 남친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정대로 결혼을 했고 풍요롭게 살았다. 그 남친은 또래 중에서 제일 먼저 장으로 출세할 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 다 그렇게 최상층의 생활을 누리며 예쁜 딸아이와 행복하게 생활을 엮어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닥친 회사 부도로 인해 별거를 시작했고, 그렇게 그들은 외로움과 싸우는 치열한 삶을 살아내었다. 그리고 이제 둘은 함께 한다.
먼저 자신을 돌아 본 그녀의 남친은 커다란 깨달음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그녀를 예전의 앳된 소년이 짝사랑 소녀였던 그녀에게 하듯이 또 그녀를 기다려 주고, 지켜 준단다. 게다가 그런 그녀가 아직 온전함에 감사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낸다니 내 가슴도 찐하게 떨려온다.
그녀의 남친이 깨달은 것은 ‘지금의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그렇게 하도록 모두 가르쳐 준 결과가 아닌가. 그러니 그녀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나처럼 지내자니 힘겨울 수밖에 없는 거였구나. 그러니 내가 너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열심히 귀 기울여 그 아픔을, 힘듬을 보듬어주고 이제라도 그녀가 치른 세월의 빚일랑 내가 너를 위해 내가 온전히 함께 하면서 갚아야 하리라.’는 것이었다.
바다 같은 눈빛을 가진 그녀를 위해선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좋은 말이나 옳은 신념이기보다는 이렇게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것임을 새삼 확인하며, 깨달음이 주는 희열을 그녀 부부와 함께 한다.
친구야, 네가 나를 믿어주고 힘을 실어주기에 나도 오늘 이렇게 너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지켜보고 있단다. 우리 나이에 찾은 행복은 온전히 우리 스스로 과거로부터 챙겨온 것이니 앞만 보고 사는 넉넉함에 취해 살자꾸나.
우리들 사람살이에는 어느 날 문득 찾아든 외로움이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오고 그것이 수치감으로 연결되고 나아가 죄책감으로까지 번지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여 계속 악으로만 돌기도 한다. 이 때 먼저 깨닫는 사람이 그 고리를 스스로 끊어내어야만 한다. 이렇게 나이들어 얻는 깨달음이란 순간의 뭉클함과 두고두고 따스하게 마음을 덥혀주는 온기의 감돌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리 바닥친 자존감일지라도, 상대를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게 해 준다고 믿는다.
내 삶의 순환 고리, 내가 무심중 쓰는 시나리오에 한 번쯤 브레이크를 걸어 보자.
그리고 깨달음의 희열을 지나온 과거로부터 챙기자.
그리고는 앞만 보고 그렇게 너그럽게 살자. <행가래로 6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