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적금으로 내 인생의 제 값을 찾자.
2007년 6월 최영수 소장
주위를 돌아보다 보면 가끔씩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래서 흐뭇한 순간들이 있다. 그럼 그렇지. 암, 그렇고 말고. 아∼ 그런 것이 틀림없어 라고 삶의 진리를 깨닫는, 그렇게 알아가는 행복한 순간에 머물 때가 종종 있다. 그 순간, 나는 내 일상을 돌아보고 삶에 무디어진 내 가슴을 덥히기도, 달구기도 하면서 삶의 고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인생이란 시간의 적금을 채운다.
그는 학교 때 별로 말이 없는, 그러나 빙그레 잘 웃기만 하는 친구로 아주 성실한 범생이였다. 남이 무슨 말을 해도 그대로 믿어주고 받아주는 친구였다. 그렇게 그는 뻥이 없는 친구였다. 아마도 그렇게 나와 달라서인지 가끔 그 친구가 보고 싶었다. 더구나 바람결에 그 친구의 결혼소식을 들으면서는 더욱 보고 싶었다. 왠지 평소의 그 친구 삶이 뻥이 없기에 꾸밈이 없는 지고지순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기회를, 내 눈이 보고 챙길 수 있는 희열을 누리고 싶은 강렬하고 은근한 내 욕구였다.
오랜만의 친구 모습은 여전했고, 지갑 속에 지닌 행복은 아가 모습 자체였다.
그렇다. 삶을 옆도 보지 않고 열심히 뻥 없이 사는 그 친구는 당연히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내 믿음대로였다.
40년 만에 처음 만난 친구가 나를 보며 소름끼친다고 한다. 그가 보기에 지금의 내 삶은 내가 어릴 때 말하곤 했던 훗날의 모습 그대로 산다면서. 나도 놀랐다. 40년 전의 그 친구가 나는 벌써 잊어버린 내 말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음에. 그러면서 문득 깨달았다. 지금의 내 모습을 이루어 내기 위해 내가 그동안 열심히 적금을 부어왔고 그래서 지금의 내 생활은 그 적금을 타서 이렇게 쓰는 모양새임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주위의 삶들이 알아진다. “우리는 저마다 젊은 날에 부은 적금을 타서 그 모습대로 살아가고 사라지는구나.”라는 깨달음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동안 열심히는 부었지만 꼭꼭 매달 정액을 제대로 붓지 못 하였기 때문에. 우리 집 가훈은 「인생을 결곡하게 살아가려는 우리는 너그러움과 익살의 아름다움이 더불어야 한다.」이다. 그래서 필요충분하게 적금을 다 못 부었지만, 틈틈이 너그럽게 웃으며 살려고 애쓴 만큼 그 빈틈을 채워 주리라 믿어본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다른, 잘 죽기 위한 적금통장을 들여다본다. 어쩌면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은 궤를 같이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나는 따로 준비해야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 적금 통장은 뒤에 남는 자식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삶도 누군가로부터 배우듯이 죽음도 누군가로부터 배우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잘 죽는 공부가 잘 사는 공부비결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제대로 된 공부비결은 날마다 꾸준히 하는 것이리라. 성공적인 합격생들은 특별히 학원이나 과외를 받지 않아도 되듯이 자신에게 날마다 끊임없이 투자를 해야 하리라.
정해진 자신의 삶의 목표를 향해 적금주기와 양을 정하고 그것을 세포가 기억할 수 있도록 체화하여 꾸준히 할 수만 있다면 삶에서 제값 찾기는 충분하리라.
우리 모두 저마다 내 값을 찾기 위한 적금 통장을 준비하고 관리하자.
매일 매일의 수고를 적립하고 수고한 나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것도 적립하기를 게을리 말자. 노년의 삶은 젊은 날의 쌓은 적금만큼 행복할 것이니까. <행가래로 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