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병과 약을 주는 친구
2007년 8월 최영수 소장
내게 있어 아버지는 집안 일이 우선이고 공부는 여가선용이라며 결코 용서 없는 제한을 가하고 그 뜻을 받들어 따르는 것이 내게 지극히 당연함으로 여기게 했다. 나 나름의 이유를 핑계로 치부하는 그 분의 침묵 속에서 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들과의 싸움에 오기로 버텼다. 그 제한덕분에 나는 슈퍼우먼으로, 일중독자로,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며 지금의 나를 꾀할 수 있었다. 아울러 나는 세상에, 사회에 신뢰라는 적금을 부을 수 있었다. 또, 아버지는 내게 가난을 겪게 함으로써 돈의 우선순위를 가늠하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머릿속의 생각들은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함을 아버지 따라 배우면서 나는 세상을 머리와 마음으로 나눌 줄 아는 장비를 나 스스로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세상에, 사회에 신뢰라는 적금을 부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내게 생존의 의지를 키워주셨다.
이 친구는 지금도 해맑은 얼굴,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동시에 지닌 여전히 젊은 모습이다.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주객을 감정에 치우쳐 결코 혼동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제일 좋은 말도 아끼는 수줍은 깍쟁이로 맨 처음의 마음과 믿음을 초지일관이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때처럼 처음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럽게 만드는 관용을 지녔고, 아무리 어려워도 마지막 히든카드를 준비해 곤란지경에서도 공유하는 시간과 사람들 속에서 책임과 의무만을 오로지 챙기며 주위의 비난과 질시를 넘어 베푸는 너그러움을 지녔다. 이 친구는 내게 최선이라는 단어를 지향하게 하면서 끊임없이 2%부족을 주지시킨다. 그렇게 병과 약을 주어 내게 실력이란 적금통장을 지니게 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이 친구로부터 지극한 관용과 끝없는 믿음을 배웠다. 이렇게 나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품고, 그 기대를 넘어 사랑이란 병과 약의 양면을 저울질 하는 나를 본다.
결코 투명하지 않는 세상, 삶이란 시험을 통과하는데 있어 이러한 무기들을 내게 갖추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어 나는 이만큼 살아 내었나보다.
이제쯤 생각해 보니, 그 어린 시절의 시련들이 어려움으로 내게 제한이란 굴레를 씌워졌을 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던 뜨거운 마음과 몸짓들이 나를 담금질하여 지금의 나로 마주서게 함을 깨달으며, 그 시절의 버겁던 마음을 살살 다독이며 고마워한다.
아버지가 곁에 없던 어린 시절에 ‘무지개’란 단어에 나를 맡기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는 무지개너머에 있을 행복에 대한 그리움에 목말라 있었다. 그리고 그 때는 많이 외롭고 그냥 서러웠으나, 그런 어려움에 대해 어느 누구와도 말을 섞을 수가 없었다. 그 때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힘든 시절을 비껴 무지개 너머에 대한 행복을 잡고픈 열망에 공부에만 매달려 지냈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무지개는 바로 그 과정 중이었음을 안다. 무지개 너머를 좇음은 그런 어려움과 유혹을 극복해내야 하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나는 그 때 그렇게 훌쩍 큰 어른으로 말잘 듣는 아이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는 ‘성인 아이’라는 외투 속으로 ‘마음대로 하는 아이’를 아버지와 다시 만나면서 키워낼 수가 있었다. 그 덕에 나는 지금도 아이가 되고 싶을 땐 내 맘대로 얼마든지 작아져 재롱도 부리기도 하고 떼쓰기도 곧잘 할 수 있다. 그렇게 「틀 속의 어른」을 내게서 밀어낼 수도 있어 때때로 나는 편안한 나를 마주하기도 한다.
이렇듯 나는 자기 자신과 싸웠던 경험과 주위의 지켜봐주고 밀어주는 친구들의 우정, 그리고 가끔씩 내가 부리는 ‘철없는 아이’를 무기삼아 하늘의 무지개를 쳐다보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세상’에 눈을 맞추며 누구나처럼 누구나스럽게 살아가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본다. 나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친구인지를.
나도 꿋꿋한 힘을 보태는 부모이고 싶다. 내 주위의 많은 따뜻한 사람들처럼.
나도 무지개 좇는 세상살이에 힘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 내 친구들처럼. <행가래로 6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