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으로 달리는 자동차
2007년 11월 최영수 소장
시집살이를 한지 한 10년이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그 날도 되풀이 되는 시어머님의 말씀이 잔소리로 여겨지면서 순간 그 말씀을 시어머니로부터 되풀이해서 또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늘 하듯이 시어머님과 얘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 당시 나눈 요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시집온 지 30년이 된 어머님의 모습처럼 저도 반드시 30년이 지나면 그렇게 어머님과 같은 모습으로 충분히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또 하나는 그 당시의 제게 바라는 어머님의 당부를 꼭 필요한 것으로 한정해 달라는 간청을 드렸다. 비록 시집온 지 10년이 되었지만, 다른 부모님 밑에서, 다른 문화 속에서 살다가 시집을 왔고 게다가 그 문화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친정에 가면 자연히 친정 부모님께 불편함을 드릴 수가 없기에 시집오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님께서 ‘이것만은 절대로 지켜서 대물림을 꼭 해야겠다.’라고 느끼시는 것만 말씀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 때 시어머님은 나를 신뢰하셨던 것 같다. 그 후로 그런 류의 잔소리는 거의 없으신 것으로 미루어 봐서.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시어머님은 원래 가방끈은 짧으셨지만 총명하신 분이셨다.
시집와서 처음에는 시어머님의 잔소리를 처음 그리고 지속적으로 들을 때는 한없는 자괴감에 빠지고 그것이 수치심으로 이어져 자존감이 마구 내려갔었다. 왜? 시집오기 전까지 잔소리는 물론 꾸지람도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는 ‘효녀’였기에. 그 효녀란 꼬리표 때문에 스스로 시어머님과의 삶을 두려움 없이 선택했는데…. 시집온 지 6개월이 넘어가면서 시어머님의 잔소리~꾸지람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바로 ‘내가 버겁다.’는 신호였음을.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해결책이 나왔다. 3일에 한 번씩 일을 저지르는 며느리가 되어 시어머님으로부터 마음껏 꾸짖음을 듣자. 내가 저지른 일이니 나는 ‘잘 못했다’는 말도 술술 나오고 그 잔소리~꾸지람에 억울함도 없고 시어머님은 마음껏 야단치시니 속이 후련하시고…. 그렇게 시어머님과의 시집살이가 행복해져서 나의 자존감 지수도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고 믿는다.
나는 평소에 하고픈 말을 참는 편이 아니라 잘 하는 편이다. ‘정직’이라는 단어에 그 핑계를 대고. 시어머님과의 대화에서는 시어머님의 말씀을 먼저 다 듣고 나서 시어머님처럼 한꺼번에 와라락 쏟지 않고 하나하나 시어머님 말씀을 처음부터 짚어 가며 나와 어머님의 생각과 기분이 어떻게 다른가를 충분히 설명을 해 드린다. 그러면 당신의 총명함으로 나를 더욱 예뻐해 주셨던 것 같다.
그런데 남편과는 이런 식의 대화가 잘 안 되어 답답할 때가 더러 있다.
지금 이 순간 깨닫는다. 시어머님은 나랑 다른 사람임을 충분히 인정하고 수용하는데, 아마도 남편은 나의 일부이자 전부로 인정하는 까닭에 내가 충분한 설명을 하기보다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이 쌓여가기만 하는 것이 결국에는 선입견으로 작용하여 더욱 대화다운 대화를 못하게 하는 것임을. 글쎄, 남편도 ‘나처럼’이려나? 남편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오 그래?’ ‘그랬구나.’ ‘그래서 네 생각은?’ ‘한 가지만 덧붙일게.’ 등이었는데.
우리 모두는 앞엔 생각과 행동이란 바퀴를, 뒤엔 감정과 생리란 바퀴를 가진 자동차다. 그러므로 전륜구동인 자동차’는 앞바퀴인 생각과 행동 중 하나를 조금만 바꾸어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기찻길을 생각하면 더욱 선명해진다. 철로가 아무리 얽혀 있어도 기차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한다. 두 가지 중 하나만 하면. 하나는 더 빠른 기차를 먼저 보내며 ‘기다리는’ 행동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가 그 일을 도와주어 ‘철로변경’을 생각해서 실천하는 것이다.
많은 알콜릭인 사람들은 평소에 말을 하는데 자신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을 잘 들어주지 않은 여러 탓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평소에 말을 참지 말고, 속으로 여러 번 연습을 해서라도 말을 나누자. 그리고 상대의 말을 열심히 들어 주자. 그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마음에 무슨 감정이 있어서 이 말을 하는지를. 그렇게 잘 들은 후에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는 말을 촌철살인 하듯 아껴 하자.
짧고 간결하게 전하자. 평소에 감정을 충분히 전하자. 그리고 그 감정을 열심히 챙겨주자.
우리 모두 마음의 눈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기사가 되자. <행가래로 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