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함이 주는 성취의 메아리 - 70 호

작성자행가래로|작성시간12.03.09|조회수24 목록 댓글 0

절절함이 주는 성취의 메아리

 

 

 

2008년 2월 최영수 소장님

 

 

  어릴 때 방학이면 선생님은 계획표를 짜서 제출하게 했다. 그 계획표는 어른들의 생각과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기억된다. 선생님은 물론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셨지만, 어린 마음에 선생님을 기쁘게 하려는 의도로 뽐내고픈 마음이 저만치 앞서 가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어른들은 아이의 ‘계획표’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 같다. 그런 탓인지 계획표를 짜면서 부모님이나 주위의 어른들 누구도 ‘너는 무엇을 원하니?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니?’라는 질문을 받아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할 만큼의 성숙도 없었지만, ‘훌륭한 사람 지향적’인 교육에 의해 아이답지 않은 완벽함으로 결코 실천의 성취감보다는 근사한 숙제를 낸 부담으로 ‘매일매일’이 미룸으로 기록이 되고 ‘허겁지겁’이란 단어로 마무리를 했던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계획표는 필요해서 짜본 기억보다는 일회성의 숙제처럼 내게는 여겨졌던 것 같다.

 

  어느 여성판사의 갑작스런 죽음을 계기로 아버지는 내게 집안일을 가르치기로 결심을 하시고 바로 실천에 옮기셨는데 그 때가 중2였다. 그 날부터 나는 새벽 5시 기상으로 살림과 공부를 병행하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치 하나 밖에 없는 딸이 공부만 하다가 그런 지경을 당해선 안된다는 자상한 아빠의 ‘지독한’ 사랑으로 나는 그렇게 가정부의 자리를 메워나가게 되었다. 어찌 보면 내게 힘든 나날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나는 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고 나의 한계와 씨름하는 허들 넘기가 시작이 되었다. 그렇게 때로는 버거워 혼자 울기도 하고 힘들어 끙끙대기도 하다가는 어느 날엔 흔쾌히 자신을 끌어안으며 종국엔 아버지의 지독한 사랑이 열병처럼 전이되어 나를 슈퍼우먼의 자부심으로 채워가는 성취를 느끼게도 했다. 덕분에 손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행복을 골고루 체험한 여자는 나뿐이라는 자긍심으로 언제 어디서나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복을 가지고 산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유일한 성취가 가정을 지키며 얻고, 그 울타리 안에서 이루다 보니, 나는 그렇게 딸들을 가지기 원했나보다. 그래서 그런 성취감을 딸들에게 주고 싶었나보다.

 

  그러나 그 때는 아버지의 지독한 사랑으로 나는 엄청난 실천의 부담과 싸우게 되었다. 그래서 나의 하루는 매일 매일 더욱 더 치열하게 계획표를 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루어지는 일들과 미루지 않으면 안 되는 공부와 하루 24시간이라는 주어진 틀 속에서 나는 뜨거운 전쟁을 날마다 치르곤 했다. 그렇게 버벅대는 와중에도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만 하는 절절한 마음을 담은 보다 더 치밀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그 실천을 익히면서 내가 세운 계획의 대부분은 매일 매일 아침이면 갈아입는 옷처럼 나를 생활의 자동생산기계라는 성취를 얻을 수 있었다. 일에 대한 호오가 없기에 보다 더 완벽하게 자동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고, 그 성취감으로 공부는 더욱 즐겁고 짜릿함을 맛보며 매진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설정하고 타협한 범위 내에서 이룬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리고 나는 비로소 일상생활과 공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나는 스스로의 유능함을 즐기는 시간들을 가지게 되면서 마치 시간의 주인공인양 누리는 삶으로 나를 더욱 더 슈퍼화, 자동화를 가속시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짧은 시간에 보다 많은 공부 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요샛말로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방법도 스스로 익히면서, 일하면서 하는 공부에 플러스 취미생활로 손을 사용하는 다양한 짓거리들로 응용의 폭을 넓히는 창조의 즐거움도 맛보게 되고, 그런 시간을 만들어 향유하는 즐거움으로 아마도 혼자 웃으며 사는 시간이 조금 더 많았을 것이라고 스스로 믿는다. 이렇게 나는 절절함이 내게 주는 성취를 맛보며 누렸다.

 

  오늘날은 무한경쟁의 시대이다. 먼 앞날의 계획은 물론, ‘지금 이 순간’의 치밀함이 모여서 삶의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내 어린 시절의 어른들은 세월에, 흐르는 시간에 맞추면 되었지만, 그래서 그들은 몸이, 자연이 인식하는 시간표만 필요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먼저 ‘지금 이 순간’의 흐름을 보다 빨리 몸에 익혀야 세상의 한 톱니가 되어 함께 돌거나 아님 튀어나가 산천과 유유자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 실천의 성취감을 어린 나이에서부터 익히게 해야 하겠다. 그러려면 시작은 아주 작고 하찮은 일에서 아이가 하고픈 욕구에서 출발하는 그 기회를 어른들은 자녀로부터 포착해서 만들어주어야 하겠다. 그런 다음, 그렇게 스스로 이루어낸 기쁨을 온전히 그 아이 것으로 느끼게 해주어야겠다. 그럼으로써 그 아이는 마음이 느낀, 그래서 자기 것으로 내재화될 때 아이는 그 진한 느낌을 좇아 다음의 성취꺼리를 찾으려 할 것이다. 그런 과정의 반복으로 성취를 익히게 된 아이는 절절함이란 에너지를 자신 안에서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며 동시에 그 힘이 아이에게 ‘나는 하면 된다’는 메아리로 공명되는 ‘성취방’이 절로 터를 잡고 뿌리내리게 된다고 확신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성취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절절함의 염원을 마음에 스스로 먼저 품자! 그리고 ‘하면 돼’란 메아리를 무릎 꿇고 간절히 청하자! 반드시 그 절절함은 성취란 메아리로 여러분에게 화답하리라. <행가래로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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