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치의 여지를 챙기는 미틈
2008년 10월 최영수 소장
이제 바야흐로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미틈이라는 11월이다.
이 가을에서 `08년 마무리할 에너지를 찾아 나는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낙엽을 줍다가, 천천히 멈춰서서 주위를 그저 그냥 서성인다. 어쩌면 이 일상의 멈춤에서 삶의 여백인양 숨어있는 또 다른 에너지를 찾으려는 희망을 품은 나를 본다.
톱 탤런트의 자살쇼크로 많이들 당황스러워하고 종내는‘나도뻔’증후군(내 삶도 뻔하다)으로 우는 것을 본다. 물론, 많은 이들이 목표를 향해 뻗어나가던, 그리고 아직은 중간 지점에 걸쳐진 삶의 손을 그대로 뻣뻣하게 뻗힌 채로다.
당혹함에 거두지도 더 나가지도 못하는 순간적인 무력감으로 마비된 채, 그냥 흐르는 눈물들을 본다.
그렇다. 명예를 좇아 매진하던 이들은‘온 세상의 우러름도 한순간에 짚신짝 버리듯 할 수 있구나’라는 당황스러움에「열심」이던 마음을 더 버틸 수가 없어서 울고/
돈을 벌어 좀 사는 것처럼 살아보려 버둥질치던 이들은 ‘그렇게 가진 많은 돈도 죽음을 말리지 못하는 거구나’라는 멍함에「최선」의 손을 둘 곳을 몰라 헤매는 처량함에 울고/
이제 좀 누리며 살아보려던 이들은 ‘그렇게 가는 사람도 있는데…’라는「부질없음」에 허망해 함도 모자라, 지금껏 살아야할 이유라고 믿고 애오라지 매달려 살아 온 탓으로 생긴 커다란 구멍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용서할 수 없는 분노로 울고/
그래도 열심히 살아왔기에 잘 마무리하려 바장이던 이들은 ‘주위가 나를 봐주지 않을 수도 있구나’라며「정통으로 맞은 뒤통수 한방」이 주는 현기증에 온통 내 맡긴 채 무너져 내리며 울고/
아직 걸음도 떼어 보지 못한 많은 새순들도 ‘에이~ 다 헛거네’하는 핑계들이 바장이는 노력틈새를 쉽게 비집고 들어오도록 버려두는 어리석음으로 주위를 울리고/
등등
그만큼 우리는 ‘남과 다르거라.’가 아니고 ‘남보다 뛰어나라’라는 말을 들으며 최고를 끝없이 지향하게 한 어른들의 가르침 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그들이 그리 섧게 운 것은 그들이 살아야 할 이유들이 다 사라져버렸다고들 스스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믿어진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돈도, 명예도, 우리네 행복한 삶의 보증수표는 아니라고 깨달을 기회를 충분히 가졌다고 본다.
그래서 문득 정의를 내려 본다.
성장이란 남과 다른 나를 찾아 가는 여행이라고―.
삶은, 그렇게 찾은 내가 나를 비롯한 많은 동행자들을 인정하며
그렇게 어울리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기회를 누리는 것이라고―.
삼림욕장의 나무는 상처를 받으면 피톤치트라는 물질을 내 보내어
나무 자신도 살고 나무에게 상처 준 인간에게도 건강을 준다.
우리 인간에게는 너도 살고 나도 살리는 처방은 없는 것일까?
나는 그 답이「여지」또는 「틈」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조금이어도 충분히 숨쉴 수 있다고 믿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나만을 위한 짬을 내어야 하고
그래서 우리는 비록 최고를 꿈꿀지언정, 목표는 2등에 두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1등이 아닌, 2등의 여지가 나만의 행복한 틈일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래서 혹여 연말증후군으로 바쁘거나 초조해진다 해도
실제 우리 생활 속에서의 짬은 물론,
우리들의 머릿속과 마음속에도「여백」이란 하얀 공간들을 만드는 치열함으로
이 미틈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바람이 낙엽을 어루고 지나간다.
어느새 바람과 한패가 되는 나를 본다.
와우~ 이 ‘조금’치의 여지로 행복한 순간의 나를 챙기자. <행가래로 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