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새움으로 움츠린 눈을 틔우자 - 81호

작성자행가래로|작성시간12.03.30|조회수13 목록 댓글 0

시새움으로 움츠린 눈을 틔우자

 

 

 

 

 

2009년 1월 최영수 소장

 

 

 

일본의 National 상표의 창업자로 성공한 기업인, ‘마츠시다 고노스케’는 3가지 은혜로 큰 성공을 이루었다고 스스로 말한다.

 

①가난한 것, ②몸이 허약한 것, ③못 배운 것(초등 4년)-이 3 가지 은혜!

 

가난-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로 인해 어려서부터 생업전선에 뛰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가난을 꼭 넘어서고자 스스로에게 계속 다짐을 했었고,

 

허약-태생이 허약하니, 평소에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이 그에겐 투자였고 그렇게 유일한 밑천을 만들고 평생을 유지하였으며, 그 덕으로 그 분은 90대에도 겨울철 냉수마찰로 30대의 건강을 지닐 수 있었다고 하며

 

못 배움-초등 4년이 그의 최종학력이었기에 그는 항상 이 세상 모든 이를 자신의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그 분은 94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570개 기업의, 13만 명의 총수이셨다.

그 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들의 어려운 시절은 우리들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을까?

부모님이 건재하신 우리 집은 가난할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복지사회에 대한 선구적 이념에 몰입하신 아버지덕분에(사회보장제도의 기초를 만드셨음) 우리들은 항상 가난해야했고, 가난체험 및 함께 나누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은 내겐 힘든 버거움으로 다가왔었지만, 철들면서 나는 가난을 나의 치레로서 패션화하였다. 그러나 그 때 내 주위에는 가난이라는 「담금질」을 볼 줄도, 들을 줄도 모르는 친구들뿐이었기에 말없이 웃기만하는 아이가 되었다.

 

성인이 된 어느 날, 가난을 아는 친구들에게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을 자신감으로 내 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당당함은 쓰디 쓴 좌절로 되돌아옴에 놀란 가슴은 지금도 저 먼 가슴 발치에서 할 필요도 없는 방어를 하는 중이다. ‘나 충분히 있어’라고.

 

이 아주 쪼금 남아 있는 어리석은 방어가 결국 나에 대한 시새움을 벌어들이고 있다.

태생이 허약한 나를 친정살이에선 아가처럼 모두가 받들어 돌보아 주었다.

그 때 형제들이 받은 서운함으로 인해 고였을 시새움도 제법 많을 것 같다.

병을 챙기지 못하면 친구 삼아라는 말처럼 지금은 병약함이 내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또 시새움을 벌고 있다.

 

배움은 내게 있어 가장 큰 행운의 선물이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주었기에 그만큼 나는 배운 값을 해야 한다고,

그래서 『노블리스오블리주』를 실천해야한다고 주위까지 항상 설득 중이다.

그러자니 받기보다 주기 바빴다. 그렇게 나를 드러내기 바빴다.

이렇게 벌어들인 시새움은 재벌급이지 싶다.

 

나의 가난을 주위에 나만의 아름다움으로 패션화했고

나의 허약함을 친구삼아 마주한 상대에게 당당하게 다가갔고

행운의 선물로 다가온 나의 배움을, 피나게 노력해서 얻은 앎을, 경험을

몽땅 무료로 세상에 되돌려 주려는 오지랖 넓음으로 해서

그렇게나 많은 시새움을 외부로부터 벌어들이고 있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이렇게 타인과의 교류로 번 시새움은 고유한 나를 ‘보통사람’에 가두고 만다.

 

‘마츠시다 고노스케’,

자신에게 치명적인 부족함 3가지를 아픔이란 상처로 움츠려 끙끙대기보다는

정면승부를 걸만큼 당당한 정직으로 일관했고

정면 돌파력은 스스로와의 시새움으로 날이면 날마다 얻어낼 수 있었고.

그렇게 쌓인 그 분의 정직함이, 그분안의 시새움들이

그분만을 위한, 그분에 의해 잘 차려진, 그분만의 밥상을 차릴 수 있었다고.

 

그렇게 그분은 겉으로 드러난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자기 안으로 거두어 들여

그것들을 시새움의 중심에 세워두고 평생을 안팎이 같도록 치열하게 치고받은

그래서 ‘마츠시다 고노스케’ 표 삶이 되었을 것임을 나는 감히 믿는다.

 

2월은 우리말로 시새움이라 한다.

 

시새움은 앙상한 나무의 다음 날을 기약할 수 있는 복된 에너지이다.

 

앙상한 나무의 싹은 스스로 품은 바장임만큼의 시새움으로 싹을 틔운다고 믿는다.

 

그러나 ‘앙상함’에만 꽃힌 아픔으로 버는 시새움일랑 버리자.

겨울나무가 뿜어내는 뜨거운 온기마냥 내 안의 아픔을 시새움으로 달구자.

그 뜨거움으로 겨울 외투를 훌러덩 벗겨내자..

그 순간의 멋쩍은 부끄러움으로 내 움츠린 싹을 아가스럽게 틔워보자.

수줍게 내 안팎을 어룬 시새움은 오르가즘으로 터져 나오는 바로 ‘정직’의 선물이다. 그렇게 저마다의 고유함을 마음껏 터뜨리자.

 

앙상한 나무의 새눈들이 지구바람의 시새움엔 아랑곳 않고 저대로 움찔움찔 삼매경이다. 우우 우우~.

 

정직의 선물, 시새움으로 겨우내 움츠린 나의 내일로 봄 마중 가자. <행가래로 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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