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삼월-나이주름따라 긷는 물오름
2009년 2월 최영수 소장
3월은 물오름이라네.
나이주름으로 잣는 올해의 내 삶은 어떤 질펀함의 한바탕일지…
담는 내 손에게서 기꺼운 수고로움을 계속 선물 받고 싶어지네.
영화 ‘마리아 칼라스 포에버’의 몇 장면들-절정기의 목소리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53세의 그 목소리 그대로 노래하겠다는 용단을 내렸건만…. 세상은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인 물건에만 흥정할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순간, 나는 마리아칼라스에게서 나이주름만큼의 깊이에서 퍼 올리는 물오름으로 열정을 뿜어내고자하는 처절한 절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들이 내겐 프로다운 기백으로 성큼 다가왔다.
아~ 나이 먹음으로 사는 삶이란 과거 기억 속 전성기의 자랑거리란 물건에 꽂혀 사는 것이 아니라 ‘켜켜이 쌓인 나이주름 속에 전성기의 아름다움이 스며들어 또 다른 빛으로 발광하도록 그렇게 용기를 내어야 하는 구나’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리고 보니 우리네 삶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온통 내어야 할 용기투성이네.
영아기 땐 ‘엄마 아빠처럼’ 걷고 말하려는 흉내 내려 물 올리느라 바장이고,
유아기엔 호기심이라는 발전기로 퍼 올리며 세상의 눈치를 익히느라 열내고,
초딩시절 엔 ‘나, 아무개요’하며 갈롱질로 물 긷느라 영차영차 하고,
사춘기엔 길 찾는다고, 길 낸다고 방황과 몸부림으로 소나기 두레박질 이고,
성인식을 치루면, 스스로 안팎의 보다 웃자란 욕망이나 기대들과 씨름하랴, 세상의 흐름 쫒으랴, 출렁거리는 두레박질에 온 몸이 젖어들고,
30대엔 드디어 나만의 색칠을 스스로에게 입히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안정이라는 틀과의 싸움이 시작되어 때로는 두레박을 고물상에 넘길까 궁리하기도,
40대엔 겨울을 알리는 가을 몸과 얘기를 나누며 보이지 않는 자신과의 속삭임으로 울고 웃다 때론 두레박을 타고 우물에 잠수하려 하기도-사추기 우울증
50대엔 살아 낼만한 배부름으로 주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그에 따른 인생살이의 셈을 하느라 효율을 따지며 두레박질에 몸을 사리기도.
60대엔 ‘소시쩍 자신’에 대한 기억을 두레박삼아 시도 때도 없이 퍼 올리는 무리함으로 마치 아가가 된 양 그 물에서 분탕질이고, 70대엔 ‘무리’와 ‘부담’을 저울질하느라 나와 남을 혼동하는 시간들로 어지러워하면서도, 나이주름여유로 노여움과 평온 뒤꼍에 두레박을 벌러덩 버려두려나 싶기도,
80대엔 삶의 끈을 고수하려는 본능 따라 버거운 두레박질보다는 응석과 떼로 몸 안의 물마저 다 흘려보내려 하며 그렇게 그렇게 자연을 맞이하려나 보다고.
우리는 죽음이라는 끝이 보이기에,
딱 한번만 둘 수 있는 한판의 바둑알잔치이기에,
그래서 우리네 삶이 희망살이가 가능하다고 말해주는 나이주름들을 본다.
이제 열심히 열정적으로 용기 내어 내 안의 물오름을 위한 발전기를 가동하자.
그렇게 돌린 발전기 덕분에 신에게도 보은할 수 있다고 나는 감히 믿는다.
그래서 나는 원한다.
자연처럼 예를 갖춘 물오름을.
마음의 행복을 찾아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남을 배려하는 자율적 몸살이의 물오름을,
때론 운 좋은 ‘철석벼락’두레박질로 모두 행복해지는 물오름을,
선대로부터 받은 사람다운 삶을 기꺼이 바톤 텃치 하는 물오름을.
춘삼월 겨울눈이 품은 소리 없는 열정의 뜨거움으로 한바탕 흐드러지게 놀고픈 지구마당에 초대장을 받은 VIP 우리들인데….
야금야금 내일이란 속삭임 따라 매일매일 긷는 부지런함이라는 두레박질로
오늘의 나를, 하루처럼 평생을, 이 생명 다 하도록 긷는 물오름이기를 바란다.
먼 산이 물오름으로 발그레 달아오른 듯 첫날밤 맞은 새색시 볼 같네.
어라~물오름으로 기지개켜다 들킨 새순들이 윙크하네. <행가래로 8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