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하루처럼,
오늘하루-가장 젊은 누리 누리세
2009년 5월 최영수 소장
세상에나, 6월을 ‘누리’라 표현한 우리네 조상님들!
하지를 지나면 밤이 길어지는데…
6월의 짙은 녹음을 세상만난 듯 맘껏 누려
그렇게 짙은 녹음의 달을 누리(세상)로 마음자리 만들게 하시다니…
그렇게 어둡고 추운 날들을 대비하는 에너지를 충분히 비축하도록 하시다니…
참으로 존경스럽다.
문득, 시어머니의 삶이 느껴진다.
삶을 하루처럼 살아내신 오뚝이 같은 분이셨다.
그분께 하루는 늘 같은 하루였지만,
그렇게 한결같은 정신과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가장 젊은 날을 누리는 젊은이처럼 살아내셨으니…
그렇게 젊은 하루를 엮어내심이
‘살아있는’ 자신에 대한 최상의 상차림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나는 듣는다.
‘내려놓음’이란 세상의 모든 치레를 벗고
발가벗은 아가로 탄생하듯이 그렇게 마지막 차림을 하라는 것으로.
‘비움’이란 온전한 나눔으로.
재물은 나누어 주면 되고, 마음도 용서, 이해, 자비면 비워지는데
강화도 어느 절 입구의 ‘생각도둑을 잡아라’라는 문구처럼
‘생각을 버리고’는 쉽지 않으니…
복식호흡을 하면서 그 호흡에 집중을 하니
한 순간 생각이 멈추는 것을 느껴보았는데…,
그 순간 ‘나’가 없어지는데,
아주 잠깐, 무언가 알아챈 듯, 기쁨을 나도 모르게 누렸는데
생각을 그렇게 비워가는 것인지는….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라는 것은
모든 인연을 최선(용서, 이해, 자비)을 다해
세상만남의 빚을 갚으라는 것으로 나는 듣는다.
그렇게 세상의 인연과 모든 계산이 끝나는 날
떠나는 자는 자신의 삶자리를 한 찰나에 휘익 거두고,
남은 자들은 인연 따라 자리매김한 생각자리들을 훌훌 털며
그렇게 세상과 하직하는 홀로서기를 말하는 것으로 나는 듣는다.
지금 이 시간은
내게 있어 결코 돌아오지 않는 것이기에
그 시간들을 스스로에게 선물로 치장하고
스스로에 대한 칭찬으로 접으려는 많은 바장임으로
흥건한 땀을 내며 몸살 하듯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엮어간다.
그렇게 오늘이 주는 최상의 세상젊음을 누리고
마감시간에는 신이 준 숙제를 잘 마쳐
「아름다운 영원누리」를 약속받으리라는 충만한 기대감으로 설레는 삶을
오늘 같은 하루, 하루를 ‘아름다운 마무리’로 채우고 싶다.
6월이 주는 선물, 녹음누리의 짙은 기운을 흠뻑 들여마시고
내 비록 세상에 왔다 가더라도
다음 사람자리를 위해
내가 오기 전 그대로를 위해
지금은 내 흔적을 잘 지우는 일로써 남은 시간 잔치를 누려야 한다고 믿는다.
자, 6월의 녹음누리를 누리세~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한 누림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세~ <행가래로 8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