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 사랑 실천하는 헌신쟁이, 엄마 [88호]

작성자행가래로|작성시간14.12.03|조회수16 목록 댓글 0

전업주부의 노불레스오불리주의 실천을 촉구하며

필연적 사랑 실천하는 헌신쟁이, 엄마

 

2009년 8월 최영수 소장

 

여러 겁을 거듭한 지중한 인연으로 이승에 다시 와서 모태에 의탁했네.’라는 말이 불가엔 있다. 겁이란 그만큼 엄마와 자녀는 지독한 인연으로 떼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겠다. 그래서 필연적 사랑을 영원으로 실천하려 자신의 몸도 젖혀둔 채 헌신하는 엄마들. 이러한 엄마들의 끝없는 보살핌덕분에 너무도 곱게 크는 우리 아이들은 거개가 공주병 왕자병 아이들로 자라고 있다.

아마도 곳곳에 산적한 위험들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기가 만만치 않은 탓도 많다.

그렇게 맹목적 모성을 부추겨 더욱 제 새끼 챙기기에만 혈안인 탓도 있다.

덕분에 태교는 물론 조기교육으로 우리네 아이들은 많이들 똑똑해졌다.

그렇게 아이들은 사실을, 상황을 판단하고 해석하는데 상당한 능력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집집마다의 외동이들이다.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세상이 행복한 삶이라고 믿어야 될텐데인터넷조차 그들에게 충분한 외로움으로 엮고 있다.

게다가 모든 교육이 입시위주로 흐르면서 친구조차 경쟁자로 밀어내야할 판이다.

진정 아이들에 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이다.

 

지금의 내 모습들을 보자.

실제로 우리는 내일도 모레도 지금처럼 살아가리라는 당연함으로 일상을 꾸린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다 보니 거개가 자칭 전문가로 자처한다.

그렇게 확실한 인생의 미래가 보장된 듯, 짝퉁전문가로 앞으로 일어날 시행착오도 만만치 않음은 젖혀 둔 채 앞만 보고 행여 뒤질세라 너도 뛰고 나도 뛴다.

어쩌면 이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잠간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자.

자녀교육에 바쁠수록 잠시 멈춤이 더욱 필요하다.

우리네 생각이 우리네 생활을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힘이 조금이라도 더 남아있을 때 멈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큰 힘으로 다시 일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제야 나를 찾고 우리를 아우르는 힘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헹가래 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자신에 열심히 물어보자.

내가 무엇에 허기져 갈구했기에 지금 여기에 이 모습인가?’

그 허기를 채우려 나는 자식을, 남편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인가?’

그렇게 나를 들여다보자. 그리고 꺼내 든 나를 광명천지에 비추어 보자.

분명 베인 상처들과 버려둔 구멍들이 훤히 드러날 것이다.

이렇게 구멍 난 뼈아픈 좌절들이 어느 새 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지

그래서 무섬타는 나대신 자식을 바짝 움켜쥐고 휘두르는 것인지

그래서 숨겨진 무섬타는 나로부터의 냉기를 사랑이란 당의정으로 발라 먹이는 것인지

 

~ 그랬구나~~

그 때 딱 한 번만 보살펴주었으면 되었을 텐데

그 몹쓸 상황에서 그 무심함으로 그 작은 상처가 가슴의 대못으로 자리하다니이제 상처 난 곳에 스스로 '' 해주자.

그리고 지금의 내 아이를 다시 보자.

어린 내게 관심을, 사랑을, 보살핌으로 다가온 가장 따뜻한 엄마 손바로 그 아프지 않은 약손이 되어주자.

그래~아이들이 해달라고 떼쓸 수 있는 엄마로 거듭나자.

지금의 나는 지금까지의 크고 작은 좌절을 셈하고 성공을 꼽아놓은 것이다.

엄마의 뜨거운 헌신, 필연적 사랑은 아이들의 모델로 세상살이에 닮아 간다.

그렇게 언제나 아프지 않은 엄마의 약손은 아이들 머릿속에 영원히 자리한다.

그 덕으로 우리 아이들은 행복하게 웃으며 세상살이를 헤쳐 간다.

그래, 엄마인 나부터 먼저 행복하자.

그런 나의 행복으로 태양처럼 음습한 사회 곳곳을 밝게 비추자.

그렇게 우리의 필연적 사랑을 사회적 엄마 노릇으로 촛불처럼 사르자.

모이자! ‘엄마란 이름아래.

어둠을 밝히는 태양을 향해서 가자!

Social Mothers Power를 꿈꾸며. <행가래로 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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