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노불레스오불리주의 실천을 촉구하며
나의 끝 모습이
너의 또 다른 시작인 삶의 고리
2009년 12월 소 장 최 보 영
살아가던 중에 내가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 있었다. 친정아버님과 시어머님의 장례식에서였다. 그분들과의 마지막 인사 시간, 그분들의 표정은? 평안한 모습이실까? 아니면? 나는 어떻게 살지? 많이 떨렸던 순간이었다. 다행히 두 분 다 얼굴은 평안하셨다. 내 뺨을 대고 안고 싶을 만큼 따뜻해 보였고 경건하기까지 하셨다. 마치 ‘너희들도 나처럼 이렇게 가면 된다.’고 일러주는 듯이 보였다. 덕분에 나는 나를 자식노릇하게 해준 두 분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장례를 치룰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살면서 그렇게 감사함을 느낀 경우가 없었다고 여겨진다.
참으로 그 때 뜨겁게 달구어진 행복감이 순간순간 스스로 ‘지금 여기’의 내 모습 영사기를 돌리며 그렇게 내 마지막을 쌓아간다.
결혼 전의 생을 함께 한 친정아버님과는 1분간 눈 맞춤으로 하루를 얘기하던 사이였다면, 결혼 후의 시어머님과는 마주하건 안하건 간에 그분의 마음과 열심히 하나 되어 그분을 되도록 평안하게 계시도록 노력하는 시간들로 채워진 삶이었다.
그분들과의 삶속에서 내가 공통으로 한 것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자수해서 광명을 찾는 식의 어리석도록 정직한 내 일상을 보여준 것이다.
다행히 친정아버님은 내게 넘치는 사랑을, 시어머님은 내게 진한 믿음을 선물로 답해주셨고 그 답 덕분에 나는 더욱 정직함으로 그분들께 다가갈 수 있었다.
내가 푼 정직보따리 때문에 때로는 당황해하시는 그분들께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말로 감히 나를 감당하게도 했고, 때로는 ‘제가 착하고 예쁘지요?’라며 그것만 보고 사시라고 응석을 부리며 무작정 강요하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나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도 두 분께 그 당시와 똑같이 할 거라며 정직을 무기삼아 그분들과의 삶을 함께 해왔다.
이제 한분 남아계시는 친정어머님과의 마지막이 남아 있다.
내겐 여전히 그분과의 마지막 인사시간이 두려움으로 남아있다.
두 분의 마지막은 내게 사랑과 믿음으로 시작을 하라 이르시는데⋯
정말, 잘 이별하고 싶다.
사실, 내 주위엔 내가 온통 믿는 사람으로 그득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정직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정직이 습관화된 내 모습이 때로는 주위와 갈등을 야기한다. 나의 지나친 정직으로 다른 이들은 덜 정직한 것으로 되어버리는 탓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상대에게 정직하려는 노력으로 ‘나 전달’에만 열중한다. 어쩌면 나 스스로 ‘너 전달’은 상대의 몫으로 철저히 남겨두려고 애쓰는지도⋯.
그렇게 나는 나를 마무리함으로써 상대의 또 다른 시작을 함께 이으려는지도⋯.
‘부모의 은혜를 갚는 길은 情의 길이요. 불효의 길은 恨의 길이다.’라고 누군가 말을 한다. 부모가 정녕 가르치고자 했던 그 길을 따라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가는 우리 네 삶이고 보면 그분들 마지막 모습처럼 우리들 마지막 모습을 꾸미는데 열심을 기우려야겠다.
경인년 새해가 머잖다.
돌아보면 2009년, 많은 이들이 떠났다.
그들은 ‘인생’이란 학교에서 수료를 한 셈이다.
우리는 그 수료식에 참석하여 아쉬운 이별과 좋은 마음으로의 일상을 준비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수료식에서 보여준, 아니 어쩌면 맡긴 또 다른 시작으로 2010년을 우리들이 시작하기 원한다.
그렇게 누구나 좋은 마음의 일상을 켜켜이 쌓는 경인년을 나는 바란다.
호랑이해를 맞는 전업주부들이여!
하루를 마감할 때면 저녁화장도 잘 하자!
그렇게 잘 보낸 하루하루를 호랑이 같은 기세로 일 년처럼, 남은 생으로 엮자!
그렇게 Social Mother`s Power를 모아서 세상을 좀 더 평안하게 하자! <행가래로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