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의 적극적 수용으로 함께 만드는 공평함과 정의의 실현
비합리적인 신념 8-세상은 반드시 공평해야 하며 정의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2003년 9, 10, 11월 최영수 소장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교육에 의해 착하게 길들여지고 또 이렇게 길들여진 사람들 대부분은 ‘세상은 반드시 공평해야 하며 정의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라는 신념에 절여진 채로 살아간다. 이러한 사람들의 삶은 대부분 좌절과 분노로 억울함이 그득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착함’은 바보와 같은 말로서 누구나가 놀이감으로 대하고 있으니까.
나는 사춘기를 가난을 신념처럼 먹으며 사는 아버지 밑에서 ‘세상은 반드시 공평해야 하며 정의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를 배우며 자랐다. 그 아버지는 내게 언제나 어려운 사람, 힘없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눈이 가도록 가르쳤음은 물론 실제로 너는 이런 아버지 밑에서 크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혜택을 가진거나 마찬가지니까 네가 가진 것을 더욱 더 열심히 나누어주어야 한다고 역설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럼으로써 세상은 공평해지고 나아가 정의가 이긴다고 굳게 믿었다.
이러한 비합리적 신념을 가지고 지내면
1. 순리를 거스르게 된다.
내 주위에 우연히도 아버지가 안 계신 친구들이 많았다. 난 그들에게 우리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해 주어야 공평하다고 생각했고 나를 그렇게 교육시킨 아버지는 당연히 그렇게 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안 계신 올케를 만나게 되면서 난 어느 날부턴가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내 안에서 잘라내기 시작했다. 올케에게 아버지의 온전한 사랑을 받게 하기 위해. 그래야 내가 믿는 세상의 공평함이 이루어진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나 아버지도 그러한 나를 섭섭하게 여기셨고, 올케는 물론 내 동생도 아마 짐작도 못한 채로 나를 어색하게 느꼈던 것 같다. 이렇듯 사람 사이 특히 혈연관계 사이에 절로 흐르는 정을 순리를 거슬러가며 퍼즐놀이처럼 편하게 끼워 맞출 수는 없는 것이다.
2. 자신을 챙기는데 죄책감이 생긴다.
우리 집이 버스 종점이어서 나는 매일 앉아서 학교에 갈 수 있었으나 중간에 일어나서 그 비좁은 버스 안에서 내 앞에 서 있는 사람과 자리를 꼭 바꾸곤 했다. 물론 그렇게 앉아 있는 중에도 미안해서 가방을 머리높이 만큼 쌓고 그러고도 학교까지 앉아 가는 것은 더욱 미안해했다. 그래서 내가 편하게 앉아간다는 나의 기득권을 버리고 옷도 꾸겨져 감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 양 신념처럼 실행하곤 했다. 결혼 후 내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남편과 아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너무나 많이 가지고 태어났다고 어린 시절에 주입된 생각에 의해 늘 미안해하며 무엇이라도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나누고자 밖을 기웃거리느라 집안 일도 밖의 일도 충분히 잘 해내지는 못했다. 또한 그렇게 많이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신에게 당당하고 싶어서 자녀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조차 부끄러워했었다. 이렇듯 처음의 단순한 미안함이 익숙해지면서 어느새 죄책감으로까지 발전하면서 보통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하게 편안히 하는 상식적인 행동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다. 이는 어린 나이에 새겨진 ‘공평함과 정의로움에 대한 정의’가 자라면서 나이와 함께 크지 못하게 되어 생긴 탓이리라.
3. ‘예외적’인 융통성을 익히기 힘들다.
공평에 대한 정의도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하고 정의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도 정상참작을 하는 경우도 허다한데-----자칫 트러블메이커로 주위의 불평이 내게로 올 때는 내가 참 바보처럼 느껴져 억울하기도 했었다. 이는 ‘내가 옳다’는 단순한 생각의 지극함으로 보통 사람들의 상식선을 넘는 범생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들과 나누기보다는 그들로부터 수긍되지 못하기에 오히려 그것이 단절로 느껴지고 그로 인해 주위의, 세상의 벽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점 외로운 섬처럼 혼자가 되어 간다. 그렇게 되니 더욱 예외를 익히기는커녕 받아들이기조차 힘들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린 시절에 읽히는 백설공주, 장화홍련전, 토끼와 거북이 등의 내용 해석도 이제는 달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예를 들어 백설공주의 경우, 오늘날에는 예쁨도 지키고 가꾸기보다는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 종내는 소멸시켜버리고 말지 않는가? 작금의 만연한 성형수술은? 오늘날처럼 개성을 내세우는 세상에서는 예쁨도 부모로부터 물려받기보다는 자신이 열심히 가꾸어서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공평하고 정의롭다고 가르쳐야 한다. 우리의 경우 이혼율도 상위국인데 장화홍련전의 새엄마처럼 일방적이고 편협한 선입견을 심어줄 것이 아니라 재혼으로 인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개발해 나가야 하는데 이 세상에는 내가 하기에 따라서 새로운 사람들과 더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지속시켜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르침으로서 세상의 공평과 정의로움을 알게 해야 한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우, 토끼가 그렇게 뛸 수 있어서 남보다 앞설 수 있고 계속 뛰기만 하면 확실히 성공하고 그래서 그렇게 계속 뛸 수 있는 체력을 키워야 한다고 가르쳐서 세상의 정의와 공평을 가르쳐야 한다. 거북이는 단순히 꾸준함을 무기로 내 세울 것이 아니라, 토끼와 애초에 다르게 생겼음을 받아들여 토끼와는 함께 나란히 서서 하는 경쟁을 안 하는 것이 공평하고 정의롭다고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거북이가 성공을 위해 목표의식을 확고히 하고 자신의 안에 있는 꾸준함과 인내심을 개발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단금질 할 계기를 가지는 것이 공평하고 정의롭다고 알게 해야 하리라.
‘세상은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공평해야 하며 우리가 함께 만든 원칙과 제도란 틀 안에서 정의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라고 한다면 세상은 훨씬 정겨울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정말 모두가 서로 서로 다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함께 행복하고 싶은 가을이다.<행가래로 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