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괴산 무심사를 찾아서..
7월에 인간극장에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던 6명의 동자승이 있는
무심사를 찾아봤다.
충북 괴산에서 느릅재를 넘으면 감물면이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더 이상 갈곳없이
느껴지는 박달산이 올려보이는 곳에 무심사는
고즈넉 하게 자리하고 있다..
무심사 입구에서 부드러운 자태로 내려보고 있는 석가모니상을
만날 수 있었다.
박달산 능선을 따라 펼쳐진 안개구름이 왠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것 같았다.
내가 무심사를 찾았을때 6명의 동자승은 수행중이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가슴아픈 사연과 어린동자승들의
수행과정을 보면서 나도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써
마음이 참 무거웠었다..
그런데...
막상 무심사를 찾고 보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 졌다
지선 스님은 동자승의 엄마의 역할로써
함께간 우리가족 역시 맛있는 식혜와
떡을 내 주시며 밝게 웃으며
우리를 맞아 주었던 것도 인상에 깊이 남는것 같다..
8여년전 지광, 지선 스님이 수행을 위해
전국을 떠돌다 이곳으로 정착하여
처음에는 고추농사를 지으며 불사의 계획을
세웠지만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다 어느날 꿈에 선인의 예지로 이곳에
불사를 지으라는 선몽을 꾸고
이곳에 작게 불사를 만들기 시작하여
작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무심사는 박달산 아래에 위치하면서도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전경이 시원하게 트여 있어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주는듯 했다..
오랜만에 산사에서
충만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8살 묘성스님에서 14살 맏형 묘덕스님까지 5명의 동자스님들은 매일 새벽 3시 40분에 잠에서 깨어나 4시에 아침
불공을 하는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아버지인 지광스님, 엄마스님 지선스님 산속의 일곱명의 식구는 아침식사를 한 후 5명의 동자스님들은 근처
학교로 등교를 하는데 너무 일찍 일어난 까닭에 등교하는 아침시간에도 버스안에서 종종 졸기도 한다.
4년전에 지광스님은 부모의 이혼,부모와의 사별등 아픈 사연을 가지고 들어온 아이들을 자신의 호적에 올려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맺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엄마스님은 4남매 집안에서 절에 공부하러 왔다가 이런 분위기에 사로잡혀 엄마스님을 자청해서 본인이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낳은 자식 이상으로 자식사랑을 베풀고 있는 장면은 우리네 인간의 본질적인 삶,사랑 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한번쯤은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것 같다.
한달전에는 5살난 묘공스님이 이곳에 새식구가 되었는데 그는 아직 한글도 모르는 상태라 불경을 외울때 주위 형들을
따라 불경소리만 내는, 절하는 방법부터 배우는 단계지만 장차 큰스님이 되겠다고 다짐을 한다.
아직 이른 나이지만 유치원을 다니면서 부터는 활기와 밝은 표정이 샘솟는 모습, 또래들과 같이 놀때면
영락없는 5살배기 그자체다.
일주일 전에는 남편과 사별한 엄마가 8살배기 어린 아들을 지광스님에게 맡기고 뒤돌아 서서 울고가는 뒷모습,
어린아이는 자기엄마가 몰래 떠나가 버린 사실을 알고는 흐느끼며 우는 광경은....
이래서 현재 이 절에는 모두 아홉 식구로 늘어났다.
소외된 중생들하고 같이 하고자 하는 꿈을 현실로 바꾼 스님의 참뜻과 세속의 상처를 가지고 절로 들어온 아이들을
남으로 만나 어느 순간 타인의 기쁨이 나의 행복이 되는것 인연은 바로 이러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스님의 미소에서는
가식이 없는 순수함 그자체가 스며져 나온다.
이번 휴가때 가족 데리고 충청북도 괴산군 박달산에 있는 무심사(寺)를 방문해 이곳 아홉 식구들과 가까이서 하룻밤을
보낼려고 한다.애들한테는 한식구라는 의미와 형제애에 대해서도 한번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다.
요즘 보통 애들은 각자 자기방, 자기물건,자기용돈, 모든것들이 따로따로식이다.
너무나 따로국밥 시스템에 뭍여서 살아가고 있어서 좀 안타깝다.
어느 순간 특별한 의미없이 찿아온 인연은 우리네 삶을 비슷하게 엮어 메는 사슬처럼, 오랜 시간동안 우리네 마음을
끌어 당기는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