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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장 글 이야기

유교 사상과 조선의 왕권과의 관계

작성자설악산/상지비|작성시간26.06.08|조회수22 목록 댓글 0

유교 사상과 조선의 왕권과의 관계

이 상 집

  유교 사상과 왕권, 왕들의 공간을 조선시대에 와서는 국가의 모든 제도와 의례를 유교 사상에 기반해서 수행하게 된다. 그래서 조선 왕조를 유교 국가다. 이처럼 유교 국가였던 조선 왕조에서 국왕과 관련된 공간과 의례가 전적으로 유교적 원리에 입각해 진행되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일 것이고 조선이 건국되고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궁궐을 중심으로 한 도성을 건축하는 데 있어서도 유교적 사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 도성 건축에 있어서는 풍수 사상도 많은 영향을 미치긴 했으나 궁궐의 배치라든지 그리고 궁궐의 구성, 건축에 있어서는 유교 사상이 절대적으로 반영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 이유들에 대해서 한양을 다른 말로 ‘수선(首善)’이라고도 하는데 '모범', '본보기'를 뜻하는 말로 서울이 유교적 덕목을 실천하는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 한다.

또한 ‘군주는 올바른 것을 근본으로 해야 된다’ 이게 유교적 기본적인 덕목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남면(南面)해야 된다. 즉 남쪽을 바라보고 정치를 해야 한다는 유교적 관념으로 경복궁을 창건할 때도 경복궁의 정문이라든지, 정전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남쪽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그렇게 배치를 했다. 바로 이것이 조선 왕조의 유교사상의 정점인 것이다.

그밖에도 도성을 건립하면서 종묘와 사직을 같이 건립하게 되는데 이런 건립하는 위치에 있어서도 ‘좌묘우사(左廟右社)’라고 해서 궁궐의 왼쪽에 좌묘해서 궁궐의 왼쪽에는 종묘를 건설하고, 오른쪽에는 사직을 건설한다는 이런 원리가 적용됐고, 궁궐 앞쪽으로 관청들을 배치하고 침전인 왕실의 침실은 뒤쪽으로 배치하는 ‘전조후침(前朝後寢)’의 원칙을 적용했다. 또한 궁궐의 각 건물이나 문에 유교적인 이상을 담은 명칭을 부여했다.

즉 조선의 첫 궁궐이자 정궁인 경복궁도 유교 경전의 하나인 『시경』 중에서 나오는 구절인 ‘길이길이 큰 복을 누린다’라는 의미에서 따온 것이다. 궁궐 공간의 배치와 왕권의 상징들에 대해서 알아보면 궁궐은 크게 그 공간을 정전과 내전 그리고 후원으로 나눠볼 수가 있는데, 그중에 왕권의 핵심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정전이다. 이 정전은 왕이 직접 신하들과 대면하면서 나라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그런 중요한 공간이다. 따라서 이 정전에는 왕의 권위를 극대화하고 그리고 유교적 관념 질서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다양한 장치들이 마련돼 있다. 이러한 정전으로는 경복궁의 근정전이 대표적이다. 어떠한 장치들이 마련돼 있는지를 좀 보면, 일단 정전 북벽의 중앙에는 왕이 앉을 수 있는 어좌를 배치하고 정전의 전면에는 넓은 월대를 마련해서 각종 행사와 그리고 향연을 열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임금이 앉아서 신하들을 대면하는 이 어좌에는 용의 문양을 금으로 그려놓았고 또 천정에도 네 마리의 용을 그려놓았고, 왕만 사용할 수 있는 그림이 바로 용의 그림이다. 그래서 용은 왕권의 상징이면서도 왕의 절대적인 권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전 앞에 넓은 마당의 조정은 문신과 무신이 양쪽의 품계에 따라 늘어설 수 있도록 동서 양쪽으로 12개씩의 품계석을 쭉 늘어놓았다. 이처럼 국가의 공식적인 의례나 그리고 공식적인 통치 행위가 이루어지는 이 정전은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유교적 통치이념이 가장 잘 반영되어 있는 공간이다. 이런 종묘의 뛰어난 건축술과 장엄함은 이미 세계유산으로 인정될 만큼 잘 알려져 있는데 이거 이외에도 종묘에서 행하는 제례 그리고 이 제례에 수반되는 제례악 역시 세계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됐다. 종묘는 국가적 유교 제사 건물로서 그 가치가 굉장히 높지만 종묘에서 행해지는 제례 그리고 제례 때 수반되는 제례악 역시 그 가치가 인정돼어 2008년에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선정된 것은 종묘가 동아시아 유교 문화의 오랜 전통 정신인 조상숭배 사상과 함께 제사 의례를 바탕으로 왕실 주도하에 엄격한 형식에 따라 지어진 건물이고 종묘 제례와 그리고 음악은 이러한 왕실 문화와 왕권의 권위를 뒤덮이는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자명한 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조선 왕릉은 북한에 2기가 있고, 남한에만 한 18개 지역에 총 40기의 왕릉이 존재하고 있다. 이 왕릉은 조선 초기부터 건립되기 시작해서 조선이 패망하는 약 500여 년간 순차적으로 조성되어 와서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는 것으로 왕족들의 마지막 안식처이기 때문에 왕족의 지위뿐만 아니라, 예법에 맞게 아주 세심하게 건축된 복합적인 건물 시설이라 볼 수가 있다. 또한 그 이전 시대부터 오랜 시간 동안 발전해온 한반도의 왕실 무덤 건축의 결정체다. 봉분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각종 부속 건물들의 배치라든지, 그다음에 왕릉 주변에 조성된 석물들이 가지고 있는 예술성 그리고 이런 왕릉을 축조할 때는 그 왕릉 축조의 과정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된 자료, 이런 기록물의 존재라든지 그리고 현대까지 이런 의례가 후손들에 의해서 계속 전승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유교 사상 그리고 유교적 규범이 아주 잘 반영돼 있는 공간이다. 왕권 중심의 통치 이념에 조선은 모든 제도는 물론 의례, 사회규범,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유교적 바탕속에 이끌어 오면서 점차 일반 서민들의 생활습관까지 스며드는 현상을 갖게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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