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사상이 이루어낸 세계적 유산인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석굴암과 불국사, 고려대장경과 직지심체요절
이상집
불교사상이 이루어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과 석굴암과 불국사 그리고 고려대장경과 직지심체요절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산사, 산지 승원부터 알아보면 한국의 산사는 주변 자연을 경계로 삼아 산 안쪽에 위치한 입지 특성을 갖고 있고, 오늘날까지도 불교 출가자와 그리고 신자의 수행과 신앙생활이 이루어지는 종합적인 그런 승원이다. 산사가 처음 경영됐던 7세기에 통도사와 부석사 그리고 봉정사, 법주사가 차례로 창건되어서 교단 활동을 이끌었다. 통도사는 당시 불교계를 주도했던 자장 법사가 계율을 강조한 그런 사찰로 창건되었고. 그 다음에 화엄종에서는 부석사와 봉정사를 창건했고 그리고 법상종의 사상적 바탕에서 법주사가 창건되었다. 선종이 유행하게 되면서, 선수행의 장소로서 이상적인 입지 조건을 갖춘 전국의 명산에 본격적으로 사찰이 건립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가가 창건되다. 산지에 있는 사찰들은 현재까지 승려들의 신앙과 정신수행, 일상생활을 위한 승원으로서 본래의 기능과 특징을 지속하여 오고 있는데 이처럼 산지사찰인 선사들은 오히려 신자들의 신앙처로서의 기능을 확대하고 그리고 수행에 필요한 공간과 시설을 갖추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을 구성하는 7개 사찰은 이런 종합적인 불교 승원으로서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찰로 최소 규모로 축대를 쌓아 자연에 순응함으로써 사찰의 건물 배치도 비대칭적이고, 비정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그러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따르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은 오늘날까지도 불교 출가자와 신자의 신앙 공동체가 수행과 신앙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살아있는 승원으로서 7개 사찰로 이루어진 연속 유산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창건부터 지금까지 중심 불전 영역의 원 지역을 유지하고 있고 그리고 시대별 사회상을 중창과 중건을 통해서 사찰 구조에 반영함과 동시에 곡저형, 경사형, 계류형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신앙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산사는 종합 승원으로서 신앙 수행 생활이 지속되고 있고 입지와 공간 조성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독특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고 각 사원마다 특유의 불교 의례를 거행하여 높은 진정성을 갖고 있다. 날마다 거행하는 일일 예불과 그리고 연중 기념일에 거행하는 연중 의례 그리고 사찰별로 특징적인 특별 의례를 거행하는데, 안거의 마지막 기간에는 신도들도 참여하여 며칠 동안 밤새워 수행하는 용맹정진과 대규모 신도들이 참여하는 야외 의식 등이 진행되고 있다.
석굴암과 불국사의 문화유산적 가치에 주목해서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면 석굴암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불국사는 사적이고 그리고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 등은 역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두 문화유산은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고대 불교 유적이면서, 석굴암은 불상을 모신 석굴이고, 불국사는 사찰 건축물에 해당된다. 모두 경주시 동남쪽의 토함산에 자리 잡고 있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따르면 이 석굴암과 불국사는 신라인들의 창조적인 예술 감각과 그리고 뛰어난 기술로 조영한 불교 건축과 조각으로서 경주 토함산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어울려져서 한국 고대 불교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그런 걸작으로 8세기 전후의 통일 신라 시대의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건축과 조각으로서, 석굴암은 인공으로 축조된 석굴과 불교 조각에 나타난 뛰어난 기술과 예술성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불국사는 석조 기단과 목조 건축이 잘 조화된 고대의 한국 사찰 건축의 특출한 예로서 그 가치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그 가치가 인정되어 유네스코에 등재가 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 두 유산이 함께 등재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석굴암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그리고 불국사는 불법의 세계를 현실 세계에 구현한 걸작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 두 유산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고, 불국사와 석굴암의 전 영역과 모두 토함산이라는 공동의 유산 구역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떨어져서 이해될 수 없는 함께 이해되어야 하는 연속 유산이라고 말하고 있다.
해인사 장경판전 그리고 세계기록유산인 고려대장경판, 직지심체요절에 대해서 알아보면 세계문화유산인 장경판전과 세계기록유산인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이다. 고려대장경판은 대장경을 찍어내기 위해서 글자를 새긴 목판을 말하는데, 이 목판이 8만여 장에 이르기 때문에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 목판들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된 건물이 바로 장경판전이다. 먼저 고려대장경판부터 살펴보면 이 경판은 고려 왕조가 제작한 ‘삼장(三藏)’이라고 한다. 대장경은 경, 율, 논으로 구성이 돼 있다. 석가모니가 설법을 한 것을 모아놓은 경장 그리고 계율을 모아놓은 것은 율장 그리고 제자들이 연구한 것을 모은 것을 논장 이렇게 해서 삼장이라고 한다. 팔만대장경이 목판은 13세기 고려 왕조의 후원을 받아서 만들어졌고, 현재 해인사에 보관이 되어 있다. 고려대장경판의 세계유산적 가치에 대해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역사를 통틀어 대장경의 우수한 표준 원전 비평 연구판으로서 최고라고 평가를 하고있으며, 보존 상태가 아주 훌륭하고, 7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완벽하고 아름다운 인쇄를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판본이 다수 포함돼 있어서, 세계 기록유산으로 그 가치가 충분하다라고 인정을 받고 있다. 고려대장경판은 한문으로 번역된 표준대장경으로서 당시 동아시아 지역의 높은 문화적 수준을 증명해주고 있다. 또 하나 이런 목판 판각 기술뿐만 아니라, 종이와 먹 같은 그런 제조 기술도 일본 등 이웃 나의 나라에 전해지면서, 고려대장경은 동아시아의 문화 및 문명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는 그런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가 된다. 한편 이런 고려대장경판을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 바로 장경판전이다. 해인사장경판전은 주불전 뒤 언덕 위에 세워진 단층 목조 건물로서, 15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처음부터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로 지어졌던 것이고, 창건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대장경 자체도 인류의 중요한 기록유산이지만, 판전 또한 매우 아름답고 건축사적인 가치가 아주 높은 유산이다.
해인사장경판전을 구체적으로 보면, 앞면 15칸, 옆면 2칸 크기의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해 놓았는데,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이라고 하고, 북쪽 건물은 법보전이라고 한다. 이런 건물 구조를 보면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식적인 요소는 거의 하지 않았고, 대신 통풍을 위해서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칸마다 이렇게 창을 두는, 창을 내는 그런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안쪽 흙바닥 속에서도 숯이나 횟가루를 섞어 놓고 소금을 모래와 함께 넣어서 습도를 조절을 하도록 한 것은 대장경판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그런 기술을 엿볼 수가 있어서, 아직까지도 이렇게 대장경판이 잘 보존될 수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따르면 이런 해인사장경판전은 사회, 예술, 과학, 산업 등의 발전을 보여주는 아주 특색 있는 문화유산이고, 미적인 면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배치 규모, 목판 보존을 위한 기능성 면에서도 전무후무한 것이라는 것이 다.
직지심체요절에 대해서 알아보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이 정식 명칭은 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인데, 원래 또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이걸 간략하게 직지라고도 한다. 직지심체요절은 백운화상이 75세였던 고려 공민왕 21년에 선도와 선관의 안목을 자각케 하고자 하고, 선풍을 이어서 계승하고자 해서 저술한 것이다. 이렇게 알려져 있다. 제자 석찬과 달담이 비구니의 묘덕에 시주를 받아서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7월에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인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헌에서는 좀 더 이른 시기에 금속 활자로 인쇄된 다른 책이 있다고 언급이 돼 있지만, 아직까지 현존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활자본으로서는 직지심체요절이 꼽힌다. 직지심체요절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안타깝게도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렇게 해외로 유출된 경위는 조선시대 고종 때 주한 불란서 대리공사로 서울에서 근무한 꼴랭 드 쁠랑시가 조선에서 수집한 장서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 골동품 수집가에게 넘어갔고, 그 후 그가 사망하자 유언에 따라서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이관돼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책은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었는데, 현재 하권만이 유일하게 프랑스에 소장되어 있고, 하권은 39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째 장은 없고, 2장부터 39장까지 총 38장만이 보존되어 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컴퓨터를 이용한 인쇄술의 발달로 오늘날 인쇄술이 절정에 이르고 있는데, 이런 당시에 금속 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의 발명은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어서 중세의 사고에서 근대적 사고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그런 계기를 마련했다. 이렇게 보고 있다. 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의 발달 과정과 그리고 정보 교환의 과정 그리고 인류가 이룬 업적을 증명하는 직지심체요절의 기록물의 가치가 인정돼서 2001년 세계 기록유산으로 선정이 되었다.
불교 사상의 전래와 발전 그리고 불교 사상이 낳은 세계유산인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그리고 석굴암과 불국사 그리고 고려대장경과 직지심체요절은 1600년이 넘게 지속되어 온 불교 사상은 한국인의 사상과 정서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신비롭고 풍부한 그리고 뛰어난 예술미와 과학성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을 남겨주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