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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설교 2025년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냐(2302.2025.4.6) 벧전 2:1-3

작성자김영윤|작성시간25.04.05|조회수136 목록 댓글 0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냐(2302.2025.4.6)

벧전 2:1-3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님께서는 이 구원의 가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5:30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다른 어떤 희생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 유익하고 잘 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수 있고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어떤 하나를 희생하지 못하고 그것을 붙잡기 위하여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엄청난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존심 하나를 희생하지 못하여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취미를 희생하지 못하고 세상적인 재미를 희생하지 못하여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세상의 친구들을 희생하지 못하고 그 친구들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담배를 끊지 못해서, 술을 끊지 못해서, 여러 가지로 구원의 가치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원의 가치는 어떠한 대가를 치루고라도 얻어야 하는 가장 소중하고 가장 중요한 최고의 가치인줄 믿습니다.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런 구원이기 때문에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구원을 양보하거나 구원을 빼앗기는 일이 없어야 하고 끝까지 구원을 붙잡고 구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구원의 가치를 얼마나 인정하면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 소중한 가치를 따라 그것을 붙잡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어떠한 희생도 감내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어떤 것 때문에 그 소중한 가치를 무시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정말 영원한 구원의 삶보다 더 가치가 있고 더 소중하며 더 중요한 것입니까?

 

오늘 본문을 포함하여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들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즉 성도들이었습니다. ‘흩어진 나그네라는 표현이 상징하고 있듯이 이들이 처해있는 상황은 신앙적으로 큰 위기였습니다. 이 서신의 수신 대상 중 한 지역이었던 갑바도기아 지역의 데린구유나 괴뢰매 지역에 가보면 고대 로마의 박해를 피해 모여든 수 만 명의 신자들이 땅굴을 파서 숨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벌집처럼 촘촘히 쌓인 데린구유의 18층 땅굴에 들어가 보면 300여년의 긴 세월동안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대대손손 살았던 그리스도인의 삶이 얼마나 눈물겨웠는지 그 얼룩진 역정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 그들이 직면하게 될 상황은 그렇게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반사회적인 존재로 낙인찍히기 일쑤였고, 황제의 신상을 숭배하지 않고 국가행사에 적극 동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산을 몰수당하고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극단적인 현실이고,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배교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배교까지는 안 가더라도 소극적으로 침묵적인 신앙생활을 통하여 신앙생활을 게을리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그들은 구원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구원을 지켜냅니다. 이런 흩어진 나그네들을 향하여 베드로 사도는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요 끝까지 신앙생활을 잘 해서 마지막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현재적인 의미와 미래적인 의미 두 가지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일 때 그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은 끝까지 예수님을 믿고 성장할 때 받을 수 있는 미래적인 요소가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핍박이 오고 박해가 오고 힘들다고 해서 중간에 신앙을 버린다든지 포기한다든지 배신한다든지 하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24:13)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신앙의 절개를 잃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구원에 이르도록 신앙이 자라가야 합니다. 끝까지 믿음을 붙잡고 믿음생활에 힘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번 구원을 받았다고 안심하고 안일하게 있어서는 안 되고 끝까지 구원의 길로 나아가도록 더욱 힘쓰고 애써서 성숙한 신앙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벧전 1장에서 하늘의 산소망을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하나님나라 백성이므로 항상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나라 백성답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모든 삶의 기준입니다. 말씀 안에 살면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말씀을 생명으로 알고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은 순종할 때 우리 영혼이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이야기하면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이 더러워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영혼이 더러워진다는 것은 죄와 사망의 법에 지배를 받아 평강을 잃어버리고 어둠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떠나면 기쁨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왠지 답답하고 무력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말씀에 있습니다. 말씀 안에서 살면 깨끗함입니다. 성결해집니다. 거룩해집니다. 이 거룩함이 능력인 것입니다.

 

또한 말씀은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우리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리를 알 수도 없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거듭난다고 하면 니고데모를 말하게 됩니다. 3:1-5절에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만을 기뻐하고, 하나님만을 두려워 하고, 하나님만을 만족하는 삶이 내 인생의 최대 목표이자 일상으로 행하여지는 삶의 습관 이라면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맞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간 니고데모의 열심, 그리고 듣고, 묻는 대화 했단 기회의 시간, 성령으로 거듭 남의 은혜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는 현장, 이 모든 것이 니고데모 뿐만 아니라 상주감리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내가 니고데모가 되고, 내가 귀 있는 자가 되어야만 성령으로 거듭나는 복된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구원의 은혜에 자만하거나 교만하고 나태함으로 살아가는 것을 경계 하시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나지 아니하면이라고 우리 귓가에 말씀 하시며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 앞에 겸손하게 경청하고 순종으로 나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영원히 변치않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입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우리의 육체도 변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사도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변하는 세상을 소망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변하는 것은 쇠하는 것입니다. 낡아지고 떨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변하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고 그 진리 위에 서는 반석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상주감리교회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좀 더 나아가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라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자랄 때 제대로 자라지 않으면 그걸 바라보고 있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키가 자라야 할 때에는 키가 자라야 하고, 학교에 다니면서 지식이 자라야 할 때에는 지식이 자라야 합니다. 정신적으로 자라야 할 때에 자라지 못하면 몸은 어른처럼 커 가는데, 생각하는 것이나 하는 일에 있어서는 어린 아이와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든 면에서 골고루 균형을 맞추어서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몸이 자라기 위해서는 많은 영양소가 필요합니다. 그 중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건강의 적과 같이 생각하는 지방도 우리가 자라가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영양분입니다. 물론 지방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비만이나 동맥경화, 고혈압 같은 성인병을 유발하게 되지만 지방을 적당하게 섭취하지 못하면 어린이의 성장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지방만이 아니라 모든 영양소가 골고루 공급되어야 우리 몸이 균형있게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단지 몸과 정신적인 면에서만 자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영적인 면과 신앙적인 면에서도 자라가야 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믿음이 자라가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라가야 할 목표도 분명하게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4: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우리가 자라가야 할 최종적인 목표는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은 우리의 주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는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라고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거듭난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거듭난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이 말씀처럼 그리스도인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실히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유일한 길이 이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모르면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늘나라의 시민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라가야 합니다. 3:20-21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합니다. 어린 아이가 10개월 동안 엄마의 배속에 있다가 태어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지만, 태어났다고 해서 사람다운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젖을 먹고 자라가야 합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라가야 하는 것처럼,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들도 신앙인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신앙이 자라가야 합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갈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구원은 거듭남의 구원을 넘어서 우리 주님이 오실 때 완성될 미래의 구원입니다. 완전한 구원입니다. 이 구원이 우리 성도의 영적인 목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구원받기 이전, 예수 믿기 이전에 가졌던 모든 삶과 습관을 버리는 것입니다.

 

1.구원의 삶을 산다는 것은 옛 것을 버리는 결단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이 깨끗이 청산해야 할 옛사람이 갖고 있는 기질입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구원의 삶을 산다는 것은 옛 것을 버리는 결단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어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는 엄마의 배속에서 살던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것이 탯줄을 끊는 것입니다. 탯줄을 끊는다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엄마 배속에서 있었던 모든 것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전의 삶을 버려야 합니다. 탯줄을 끊는 것처럼 과감하게 끊어야 합니다. 태어날 때 탯줄을 끊은 것처럼 죄악도 끊어버려야 합니다.

 

제가 운동을 북천에서 열심히 70세 정년은퇴까지 건강하게 해야 성도들에게 아프다고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시간나면 열심히 뜁니다. 그런데 눈이오거나 비가오거나 너무 추우면 북천에서 못뛰고 혼자 하는 것이 있는데 배드민턴입니다. 혼자 잘 칩니다. 혼자라도 열심히 치면 땀이 납니다. 혼자 어떻게 치느냐고요. 제 사무실에 만들어 놓았습니다. 혼자서 하는 배드민턴 놀이가 재미 있습니다. 공을 줄에 매달아 놓고, 배드민턴 채로 그 공을 칩니다. 그러면 방채에 맞은 공은 멀리 날아갔다가, 매어져 있는 줄 때문에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아무리 힘껏 공을 쳐도 날아갔던 공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배드민턴 채로 힘껏 때렸는데도 왜 공이 되돌아옵니까? 공에 달려 있는 줄 때문입니다. 줄이 공에 달려 있는 한 아무리 힘껏 공을 쳐도 공은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공을 멀리 보내기 위해서는 공에 매달려 있는 줄을 끊어야 합니다. 줄만 끊으면 공은 멀리 날아갈 수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옛 생활이나 옛 습관들이 우리에게서 포기되지 않으면, 줄이 달린 공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항상 제자리일 뿐입니다. 얼마쯤 성장한 것 같아 보이다가도 결정인 순간에는 처음 자리로 돌아와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알기 이전의 모습 잘못된 것들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옛 생활의 줄을 끊지 않으면 제대로 새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3:12절에서는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씀했습니다. 4:22-25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고 말씀합니다. 이런 옛생활을 끊어버리지 않으면, 줄에 달린 공이 멀리 날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신앙의 아름다운 비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신앙의 세상을 볼 수 없습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총의 세계에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의 즐거움과 영광을 맛보는 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엔가 신앙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을 마음 속 깊이에서 경험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믿음이 가져다 주는 놀라운 능력과 힘으로 세상을 이기는 짜릿함을 경험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세상이 주는 쾌락보다도 더 깊고 오묘한 신앙의 감격을 가슴속에 품고 기쁘게 살아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신앙의 깊은 맛을 느껴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왜 우리가 그런 깊은 신앙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지 못합니까? 그건 버려야 할 옛 사람의 성품과 옛 사람의 삶을 버리지 않고 여전히 굳게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갈 수가 없습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면서 얻게 되는 놀라운 은총의 세계도 맛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 하는 것이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신앙의 깊이와 은총을 모르기 때문에,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을 보면 꼭 저렇게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예수 알지 못했을 때 가졌던 모든 삶과 즐기던 것들을 과감하게 끊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새롭게 태어남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악독입니다. 악독이라는 말은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독한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남을 해치려는 심사를 말합니다. ‘기만이라고 하면 속임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되고 간사한 말로 남을 속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이 외식인데 외식이란 위선을 말합니다. 거짓으로 꾸미는 것이요,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신앙과 삶이 다른 것입니다. 시기하는 것도 버리라고 합니다. 시기란 내가 갖기를 원하지만 갖지 못한 것을 남이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부러워하여 속으로 그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또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없을 때 그 사람의 약점이나 결점을 들어 남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욕, 악담, 중상모략, 험담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버릴 것을 잘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가만히 자신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버려야 하는 것은 무엇이며, 끊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며, 정말 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결단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오랫동안 몸에 배어있고 습관에 배어있는 것을 어찌 버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고의적인 반항입니다. 하나님은 버리라고 말씀하지만 나는 그런 죄악을 버리기 싫다는 반항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막3:5절에 보면 손마른 자에게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내 손이 말라붙었는데 어떻게 내밀라고 하십니까라고 반항하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손마른 자가 주님의 명령앞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손이 회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버리라고 할 때 버리겠다고 결단하고 미련없이 버리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기쁨과 더 큰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버릴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해졌을 때 우리가운데 새로운 갈망이 생깁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2절에서 말하는 신령한 젖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갓 태어난 어린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은 엄마의 젖 밖에 없습니다.

 

우리 영혼이 먹어야 할 가장 적절한 음식이 신령한 젖입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우리 심령이 깨끗해지면 영적인 갈망이 강하게 생깁니다. 우리가 육신이 배고플 때 생기는 식욕처럼 우리 영혼의 갈망이 생깁니다. 2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갓난 아기들이란 말은 갓 태어난(newborn) 아이들을 말합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의 젖을 간절히 찾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도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찾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은 엄마의 젖 밖에 없습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엄마되시는 분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엄마가 젖을 먹이려고 애를 씁니다. 요즘은 분유가 잘 나와서 엄마의 젖을 대신하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의 몸에서 나온 엄마의 젓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아기에게 엄마 젖을 먹이면 엄마의 신체에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생산된다고 합니다. 이 호르몬은 임신으로 이완된 산모의 몸을 원상태로 회복시켜줄 뿐 만 아니라 아이에게는 면역력이 높아져서 잔병치레를 적게 하고 성장에 필요한 가장 좋은 영양소를 공급하게 된다고 합니다. 또 엄마와의 충분한 접촉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감을 줍니다. 그러므로 엄마의 젖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에게 있어서 본 교회에서 먹는 영의 양식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조금은 담백하고 컬컬해도 말씀을 그대로 먹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라고 비유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우리 영혼이 먹어야 할 가장 적절한 음식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젖은 순결해야 어린아이가 그걸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습니다. 순수한 젖은 상하지 않는 젖을 말합니다. 물에 타거나 희석시키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이 먹어야 할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확실한 영혼의 양식입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19:7-10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할렐루야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자라가고, 우리의 신앙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기 위해서는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모한다는 말은 간절히 바란다는 뜻입니다. 마치 배고픈 어린 아이가 엄마의 젖을 먹겠다고 엄마의 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자 하는 갈급함과 집요함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 갈급한 사람들은 그 말씀을 먹을 때에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상 그 어떤 맛있는 음식보다도 더욱 달고 맛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신앙인들의 고백입니다. 그런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먹을 때에 우리의 심령이 자라갈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가 거듭나게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 바로 앞인 벧전1:23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기에 우리 안에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 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의 권능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보다도 더 예리합니다.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이 말씀 앞에 설 때에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볼 수 있고, 그 죄와 허물을 도려 내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를 쳐서 물리치는 성령의 검과 같습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온갖 유혹으로 우리에게 달려듭니다. 그런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그 때에도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마귀의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듯이 상주감리교회 성도들도 성령의 검으로 마귀를 물리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를 온전케 만들어 주는 것은 오직 말씀뿐입니다. 딤후3:16-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말씀 뿐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면 신령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28:2절 이하에서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라고 하면서 말씀대로 살 때 주어지는 축복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또 신29: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이 형통하기를 위해서 기도하십니까? 그렇다면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함으로 신령하고 순전한 젖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으로 말씀충만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본문 3절에서 이렇게 권면해 줍니다.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 주셨고, 그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는 말씀은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여 그 말씀 안에 살아가라. 그리고 그 말씀을 먹음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라그런 말씀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판단할 수 없을 만큼 어리다 할지라도, 세상의 모든 어린 아이는 자기의 어머니 품에서 가장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울던 아이도 엄마가 품에 안고 젖을 먹이면 금새 울음을 그치게 되고, 얼굴에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은 모두 자신을 버린다 하더라도 오직 엄마만은 자신을 버리지 않고 사랑해 준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10개월 동안 엄마의 배속에서 느꼈던 심장 소리와 보이지 않는 사랑의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먹는 어린 아이처럼 행복하고 평온한 얼굴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날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진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순간 순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강렬하게 경험하고 느낀 사람일수록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자주 자주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게 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내가 얼마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스스로 진단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건 내가 얼마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말씀 없이도 내 삶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이나 사랑을 덧입지 않고도 내 힘으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쉽게 말하면, 말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전혀 무관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의 신앙은 자라가야 합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야 합니다. 구원의 가치를 분명히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 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는데, 버릴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아기와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살아감으로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놀라운 은혜와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얻어서 영적으로 승리하여 성숙한 신앙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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